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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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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g 27, 2018
  • 81

(판화가 -오현철-의 기고글)

 

나는 판화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10년 넘게 목판화. 동판화.석판화.실크스크린을 배웠습니다.

조영남이 앤디워홀을 들먹이며 자신의 행위가 앤디워홀과 비슷하니 정당하다고 합니다.

판사는 미술에 '미' 자도 모르는 판사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고요.
미술의 '미'는 아름다울 '미'자를 씁니다. 미술의 술 자는 기술 '술' 자를 씁니다.
미술가는 아름다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럼 판화가는 어떻습니까?
1960년대에 세계미술가 협회의 내용을 보면 그때부터 현대판화가 탄생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판화가의 위상이 작가로의 위상으로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화는 판화가(판화작가)와 판화공방 프린터로 구분되어 집니다. 다시 말해 미술과 판화의 기술을 결합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 판화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복잡한 판화의 기술적 측면을 자세히 알지 못해 판화공방의 프린터에게 기술적인 자문을 받으며 판화작업을 합니다.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은 이런 측면으로 접근한 팝아트 작품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팝아트의 미술 사조를 갖는 실크스크린 작품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그럼 왜?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을 판화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1960년과 1962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미술가협회원들이 정한 오리지널 판화의 원칙과 세부사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판화는 찍는 것 뿐 만 아니라 에디션(복수의 그림)을 찍어내야 하는데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은 복수로 여러장을 찍어 에디션을 낸 판화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비슷하게 찍어 에디션은 없지만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산업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표나 마를린 먼러 같은 배우를 작업해 왔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앤디워홀이 작업하는 실크스크린에서 기술적인 면이 어떤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술적 행위와 달리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앤디워홀의 경우 마를린 먼러를 실크스크린 하기 위해 먼저 먼러의 사진을 구하고 그것을 필름으로 만들고 암실에서 감광을 하고 탈막하여 실크스크린 된 먼러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색을 정해주고 프린터를 통해 먼러를 프린팅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색을 정해주는 것인데 판화는 한가지 색이 바뀌면 판도 하나 더 만들어야하는 시간과 기술적인 노고가 필요합니다.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을 보면 그의 그림은 4가지 이상의 색을 좀 처럼 쓰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색을 지정하고 판을 만들고 하는 작업이 시간과 돈과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그럼 실크스크린을 찍는 것을 프린터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실크스크린을 찍을 때는 스퀴지로 밀기 때문에 내가 찍으나 다른 사람이 찍으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종합하면 앤디워홀이 마를린 먼러를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하려고 할 때, 사진은 이것으로 하고 크기는 4절 크기로 하고 얼굴색은 빨. 노. 파로 한 장씩 찍고 머리는 주.연.녹색으로 찍고 입술만 동일한 빨간색으로 찍어주세요. 라고 말하면 나머지는 모두 기술적인 측면인 것입니다. 그래서 앤디워홀은 본인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 그럼. 조영남이 앤디워홀을 얘기하는 것 같이 조영남이 앤디워홀과 같아 지려면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직접 캔바스에 바르는 색은 혼합과 겹침을 통해 무수히 많은 색을 내기 때문에 조수에게 이 색들을 모두 지정해 줘야하며 정확하게 좌1cm 우2cm에 회색. 좌2cm 우3cm에 검정색 처럼 알려 줘야합니다. 또한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물감으로 마띠에르는 내지 말아야하고 화투의 콜라주는 정확하게 본인이 캔바스에 놓아보고 사진을 찍어 조수에게 똑 같이 붙이라고 해야합니다. 붓 터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채 같아 감정과.절제. 슬픔과 분노. 기쁨 등이 표현되기 때문에 붓 터치 만으로도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어 조수에게 시키려면 붓터치를 최대한 없애야 합니다. 이렇게해야 앤디워홀과 같이 작업한 팩토리 조수들과 동일하게 한 것입니다.

 

조영남의 그림을 보면 조영남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하나 본인의 살아있는 붓터치도 없고 수 십만가지의 색을 지정해 주어 어느 위치에 하라고 한 바도 없습니다. 그것은 조수가 더 우월하기 때문에 다 맡긴 것이지요. 조영남이 진짜 본인도 이 만큼 그릴 수 있는 것이 맞다면 독일법정이 한 것 처럼 법정에서 그리게 하면 됩니다. 그 놈의 많은 아이디어로...

 

이것은 음악가 조영남이 미술계에 들어와 본인 하나만 살겠다고 국제미술협회법도 무시하고 한국에 있는 10만 작가를 다 죽이는 샘입니다.

 

이것이 무죄로 판명되면 이제 공모전도 없어져야하고 학교 미술수업도 없어져야하고 미술대학도 없어져야하고 미술학원도. 미대입시도 없어져야하며 외국과의 미술교류전이나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내가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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