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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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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Aug 11, 2014
  • 1815

조선일보 2014. 6.23. <최보식이 만난 사람>


 "3개월 남았네요, 길바닥에 쫓겨날지...잠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네요"


['금요일의 사나이' 별명을 가졌던… 김달진 한국미술정보센터 소장]


"전시회장이나 가시적인 것에 지원해야 생색이 나지 미술자료 보관에 지원하는 건 정부도 기업도 관심이 없어"

"우리 가족은 방바닥이 아니라 자료 상자들 위에서 잤어요 집주인이 '천장 꺼진다' 항의해 상자 옮기려 이웃 지하방 빌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김달진(59) 한국미술정보센터 소장이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다.


"23일 제가 '김세중기념사업회'에서 시상하는 한국미술저작출판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희 공간 문제가 3개월 남았네요. 정말 길바닥에 쫓겨나게 되는지,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네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기사화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문제는 김달진 개인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무슨 공간 문제? 그는 자신의 사정을 당연히 내가 모두 알고 있는 걸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일러준 대로 신촌역 8번 출구를 나와 8번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서울 홍익대 근처 골목 안에 있는 건물. 그가 '저희 공간 문제'라고 지칭한 '한국미술정보센터'는 이 건물의 3개 층을 빌려쓰고 있었다. 도서관, 전시관, 자료실, 수장고로 이뤄졌고, 그 속에는 미술 관련 단행본ㆍ희귀본ㆍ연속간행물ㆍ미술학회지ㆍ연구논문 등이 보관돼 있다. 자료를 무게로 따지면 18t쯤 된다. 일반인 무료 열람이다.


"전세보증금이 9억7000만원입니다. 이 중 8억2700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어요. 그런데 '일몰제'라고 해서 이 지원 사업이 종료됐다는 거예요. 보증금을 정부에 반환해야 할 기간이 3개월밖에 안 남았어요. 평생 발로 뛰며 모아온 자료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 겁니다."


김달진씨는“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역사로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동진 기자―정부 측에서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나요?


"작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리품을 팔았어요. 박원순 시장,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 문예진흥위원장, 청와대 ○○○수석, ×××국장 등도 만났고…. 정말 해볼 수 있는 일을 다 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구걸을 해야 하나' 싶어요. 이런 자료들이 김달진 개인의 것이 아닌데."


―이대로라면 석 달 뒤에는 어떻게 되죠?


"지금으로서는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어요. 지인들은 '수집 자료를 몽땅 불태우는 퍼포먼스라도 벌여라'고 합니다."


―아까 한 바퀴 돌아보니까 자료 열람자가 딱 두 명이 있더군요. 공공 이용도가 이렇게 낮다면 정부 지원 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요?


"그렇지요. 사람들이 모이는 전시회장이나 가시적인 것에 지원해야 생색이 나지, 미술 자료 보관에 지원하는 건 주목을 못 받죠. '몇 명이나 그걸 이용하느냐'며 경제적 효용성을 따집니다."


―그게 우리 상식이지요.


"하지만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여기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말고는 전국 어디에도 이런 자료들이 보관된 곳이 없기 때문이죠."


―사회 공익 차원에서 후원하겠다는 민간 기업들은 없나요?


"한국메세나협회(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 모임)에도 찾아갔어요. 대기업 오너들의 관심은 전시ㆍ연주 같은 작품에 있지, 자료 보존에는 없어요. 지금 필요한 것은 자료들을 보관할 공간입니다. 다른 것까지 바라지 않아요. 서울 변두리에라도 건물만 지원해주면 어떻게든 끌어나가고 나중에 기부 채납할 겁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상표, 담뱃갑, 기념우표 수집을 했다. 그러다가 여성 잡지 등에 실린 세계 명화(名畵) 화보를 떼내 스크랩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1972년 경복궁에서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시회를 본 뒤로는 외국 명화 대신 국내 작가들의 자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은 형편도 안 됐고 생각도 없었죠. 가족들은 '신문 쪼가리를 모아서 어떻게 밥 먹고 살겠나' 하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유명 미술 평론가나 미술 담당 기자들의 이름을 알게 됐어요. 이분들에게 '저는 이런 자료 수집을 하고 있으니 혹시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겠느냐'는 편지를 보냈어요. 당시 딱 한 분으로부터 '취미는 취미일 뿐 직업으로 연결되긴 어렵다'는 답장을 받았어요."


그는 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展示界)'라는 미술 잡지를 보고는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 3년간 사환 겸 기자로 일했다. 1980년 잡지가 폐간됐다. 그는 고향인 충북 청주로 내려와 누나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어느 날 미술 평론가인 이경성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됐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전에 '한번 뵙게 해달라'며 그분께 여러 번 편지를 썼고, 그렇게 해서 제가 만든 자료 스크랩북을 보따리에 싸들고 가 큰절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 인연으로 다시 그분을 찾아간 거죠. '청소부라도 좋으니 미술관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어요."


그는 '일용 잡급'으로 채용됐다. 일당 4500원을 받으며, 화가들의 인명 카드 정리와 자료집 관리를 맡았다.


"그때만 해도 자료 수집과 보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자료 수집을 하러 바깥에 나가야겠다고 하니 근무 중에 놀러가는 걸로 생각했어요. 윗사람들을 설득해 금요일마다 인사동과 동숭동 화랑가와 조선일보ㆍ 중앙일보를 돌며 소모품으로 여겨온 팸플릿과 도록, 보도 자료 등을 수집했어요. 이렇게 해서 '금요일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거죠."


오랜 세월 팸플릿ㆍ무거운 도록을 담은 가방을 메고 다녀 오른쪽 어깨가 처졌다고 한다. 2년 전에는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단순히 자료 수집에만 머물렀다면 지금의 김달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시회장에 가면 전시된 작품들과 팸플릿에 실린 작품 사진들을 대조했어요. 그게 맞지 않아요. 주최 측에 '왜 전시회장에 안 걸려 있는 작품이 팸플릿에 실려 있느냐'고 따졌고. 또 전시된 작품 수도 일일이 셌습니다. 가령 팸플릿에는 85점으로 돼 있지만 78점만 전시돼 있는 식이었지요."


―참 꼼꼼하군요.


"그러니 저를 '꼼꼼한 달진씨'라고 했던 거죠."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전시가 끝나면 결국 남는 것은 팸플릿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이것만이 전시회를 증명해주죠.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역사로 남는 겁니다"


그는 1985년 '선(選)미술' 겨울호에 '관람객은 속고 있다'는 글을 게재했다. 수집 자료들을 토대로 작가의 학력ㆍ전시 경력ㆍ연보ㆍ연표 등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지적한 것이다.


"미술계에서 센세이션이 됐지요. 그때까지 작품이 어떻다는 얘기만 했지, 기록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직접 평론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은 없었나요?


"첫 직장인 '월간 전시계'에 근무할 때 C씨의 전시회를 보고 와서 '작가는 독수리를 그렸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독수리인지 병아리인지 모르겠다'고 썼어요. 작가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합기도도 하시는 분이었는데. 잡지사로 전화를 걸어 '얼굴 한번 봐야겠다'며 난리를 쳤어요. 그때 남의 작품을 비평하는 것은 내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1980년대 그는 미술계의 뉴스 메이커였다. 문예연감의 엉터리 통계ㆍ돈을 받거나 인사치레로 덕담을 해주는 '주례사 비평'의 평론가 개인별 횟수 등…, 그가 조사 발표할 때마다 언론은 인용 보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표한 '올해 미술계 10대 사건'도 알고보면 순전히 그 개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의 지명도와는 달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5년간 일해온 그의 직급은 경비원과 같은 '기능직 10급'이었다. 1996년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떠나 민간 화랑의 자료실장으로 옮겼다. 그 뒤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어 독립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그만두기로 작정했을 때 울음이 나왔어요. 자존심이 상했고 좌절감도 컸지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때 떠났기에 지금의 미술정보센터를 해낼 수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보관했나요?


"결혼해 서울 석계동의 단독주택 이층에 세들어 살 때 방이 자료 상자로 가득 찼어요. 우리 가족은 방바닥이 아니라 자료 상자 위에 요를 펴서 잤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였는데 그 기억을 하더군요. 1층에 살전 집주인이 '천정이 꺼진다'고 항의해 상자들을 옮겨놓기 위해 이웃의 지하방을 빌려야 했어요. 지금도 4.5t 분량의 자료는 고향의 형님 집에 맡겨놓았어요."


그는 서울 동숭동에 건물 지하를 얻어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을 열었다. 비가 오면 물이 샛다. 공간도 협소해 일반 공개는 월수금 오후 2~6시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화부의 예술전용공간 지원 사업에 응모한 것이다. 그렇게 마련한 전세금을 돌려줘야 할 시간이 눈앞에 왔다.


―이쯤 했으면 개인으로서 할 만큼 했는데, 이제 그만둘 생각은?


"차라리 그만 손 떼라는 말도 들었어요. 저도 압니다. 아집(我執)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욕심보다 더 무서운 거죠."


―공공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자료 기증을 해버리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지요.


"이걸 맡아서 관리해주지 않아요. 아마 쓰레기 취급을 받겠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자료 보관의 필요성을 알고 애정을 갖고 해내느냐에 달린 겁니다. 제게는 천직이었지만요."


―가족은 그만하라고 하지 않나요?


"사실 집사람도 제가 여기서 손드는 것에는 반대해요. '당신이 이 일로 사랑받았고 이 일이 당신의 존재 이유인데, 힘든다고 그만두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아니까요."


―잘 살아온 것 같습니까?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는 것도 행복한데, 저 같은 사람을 미술계에서는 '자료=김달진'이라고 알아 주니까요."


그는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인물로 한 출판사의 중학교 도덕교과서(2013년)에도 소개됐다.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해요. 첫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단지 자기만족만이 아닌 공공의 이익이 되는 일이면 더욱 좋다. 둘째는 자기 일에 미쳐라. 마지막으로는 차근차근 쌓아 올려라. 욕심내서 급하게 이루려 하지 말고 참을성을 가지라는 거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는데 공익에도 부합했다. 이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었으나 못 했던 일이었다. 그는 별 의심 없이 평생을 바쳐 이 일에 몰두했다. 한 작은 개인의 헌신에 대해 우리 정부도 응답의 의무가 있다고 본다. 설령 대형 사건 뉴스로 경황이 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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