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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03, 2008
  • 48233

 1. 내적 필연성의 기본 개념

    '내적 필연성'의 원칙은 칸딘스키에 있어 중요한 기본 개념으로 그 범위가 대단히 포괄적이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음을 먼저 밝혀둔다. '내적 필연성'에 대해 칸딘스키는 그의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가장  자세하고 심도 깊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이론적으로 체계화 시켰으며, 그에 대한 결과로 유명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칸딘스키는 예술가란 "자연의 형태를 빌어서 표현한 내적감정에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고 정신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칸딘스키가 활동한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는 물질적 세계관이 우세하여 물질적 부와 기술의 진보에 대한 관심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물질 속에 내재한 정신의 현존을 부정한다. 그러나 물질 속에는 추상적이며 창조적 정신이 숨겨져 있으며, 물질 속에 존재하는 정신은 물질을 통해서 가장 많이 내면적인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내면적 영혼은 정신에, 외면성은 물질에 속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비물질적인 것을 갈망하고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로 성립된다. 내적인 요소는 예술가의 정신적 감정이며, 이 감정은 관조자에게 유사한 정신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즉, 정신은 육체와 연관되어 있는 한 감각을 통해서만 감정이 감응하며, 비물질적인 것(예술가의 감정)에서 물질적인 것(예술가)에로, 그리고 물질적인 것(예술 작품)에의 비물질적인 것(관조자의 정신적 감정)에로 연결되는 다리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예술이란 대상을 맹목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며, 인간의 심성을 순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여기서 칸딘스키는 이러한 순화에 대해 정신적 운동을 제시하며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술은 정신적 생활에 속해 있으며, 또 그 생활에 있어서도 예술은 가장 강력한 대리자중의 하나로써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생활은 복합된, 그렇지만 명료하고 단순화된 운동으로써 인식이다. 즉, 인간의 심성을 순화 발전시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잠시 외면적으로 정지한 듯 하지만 연속적이며 중단되지 않은 운동이다."
 
    '내적 필연성'의 작용, 즉 예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시대, 주관적인 것에서의 영속, 객관적인 것을 발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내적 필연성'의 수립을 위해서는 외적인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회화에 대한 많은 문제의 기저에는 내적인 것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외적 요소인 색과 형태의 미학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색과 형태의 미는 예술에 있어서 아무런 충분한 목적이 없으며, 다만 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내적 필연성'의 원칙에 따라 서로 조화해야 한다."

 

     즉, 색채란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지만 색채가 물질적 유기체로써 형태에 영향을 끼침은 부정할 수 없다. 형태 자체는 추상적이며 기하학적이라 말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내적인 방향을 가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형태와 동일한 성질의 정신적 실체를 갖는다. 그래서 모든 형태는 민감하여 그 일부분만 옮겨 놓아도 본질적 변화를 받게 된다. 즉 주어진 형태의 내적 음향에 있어 어느 정도 은폐와 노출은 예술에 있어 특별한 힘이며, 그 표현 수단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또한 형태 전이의 가능성은 순수한 예술적 창조이며, 결과적으로 예술가가 모든 형태를 표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정의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화면상에 개개의 형태들을 무목적으로 전이시킨다는 것은 형태의 내적 음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이 부분에서 비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난 순수한 예술적 원칙과 '내적 필연성'의 원칙이 동일함을 발견하게된다. 이러한 '내적 필연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신비로운 근원에 연유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세 가지 신비한 필연성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첫째, 창조자로써 예술가는 자신의 고유성을 표현해야 한다.
 둘째, 시대의 아들로써 예술가는 자기 시대의 고유성을 표현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예술의 봉사자로써의 예술가는 예술인만의 고유성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처음 두 요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반면, 세 번째 요소는 제약을 받지 않지만 이 요소들은 상호 밀접하게 결속 침투되어 있어 각 시대마다 작품의 통일성을 만들어 준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또한 각 시대의 정신성은 그 시대가 표현하는 새로운 정신적 대응에 상응하며, 이러한 시대적 표현은 새롭고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의미에서 공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칸딘스키는 많은 화가들이 그 후 봉착했던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 위험은 매우 현실적인 방식으로 외적인 형태들에 의해 강하게 마비될 정도로, 색채를 구상적인 형태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천박한 환상의 위험성이다. 따라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들은 '내적 필연성'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나고 있게 때문에 예술의 위대성은 그것이 외적 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적 본질 (내적 필연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겠다. 이상에서처럼 알 수 있듯이 칸딘스키의 예술 정신에 있어서 '영혼적 의미로서의 정신', '내적인 것의 전달', '물질의 배후에 있는 정신적 실재성',을 위하여 사물의 외양은 간과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것들은 '내적 필연성'이란 원칙에서 유래되어 칸딘스키에 있어 비대상회화로 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칸딘스키의 작품을 통해 본 내적 필연성의 형성 과정 고찰

    19세기말의 눈부신 과학의 발달은 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끼쳐 문학에서는 자연주의를, 회화에서는 사실주의를 낳게 했다. 사실주의란 용어는 아마 미술사에서는 가장 의미가 광범위한 단어일 것이므로 여기서 그 의미의 실질적인 정의를 내려야 하겠다.
    실물과 흡사한 그림이나 조각을 보고 '사실적'이라고 하는데 사실주의적 작가들은 자연의 외모를 어느 정도 변화시키기는 하지만 그 변화가 왜곡의 정도까지 가서 바로 그친다. 이러한 정의에 준해 20세기전까지의 작품을 보면 거의 모두가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한 시대의 사실적 세계가 또 다른 시대에서도 사실적인 세계가 될 수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술가가 물체의 외형을 그와 비슷하게 그릴 때에도 이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데 있다.

 

    시각적인 세계는 작가가 자기 시대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반영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되는 재료에 지나지 않게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사실주의적 미술의 원리가 추상 미술로 이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실주의의 비주관적인 이념은 예술가에게 화면 속에 자신의 내적 세계를 투영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표현의 세계를 추구하도록 유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시기에 칸딘스키는 현대 미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즉 회화는 주제의 선택이나 어떤 정확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가의 내면적인 곳, 무한에의 동경 등을 부각시켜 새로운 추상미술의 세계를 연 것이다. 이처럼 칸딘스키가 20세기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침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가 일관되게 표현해온 '내적 필연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1866년 12월 4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바실리 칸딘스키는 중국과 접경한 동시베리아 출신의 아버지와 순수한 모스크바 토박이인 어머니 밑에서 서유럽과 동양 사이에 있는 러시아 특색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성장했다. 그의 친할머니는 동양인의 피가 섞여 있다고 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신비주의적 인식을 가지게 하는데 기여하고 유년 시절부터 가져온 예민한 색채 감각과 회화에 대한 깊은 관심이 내면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1886년부터 1889년까지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률과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이 무렵 칸딘스키는 그의 작품 세계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체험을 하게된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프랑스 인상파 전람회에서 모네의 <짚가리>(도판1)를 본 일이며, 또 한 가지는 모스크바 궁전 극장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듣고 감명을 받은 일이다. 러시아 사실주의 밖에 몰랐던 칸딘스키에게 대상이 결여된 작품이 강한 감동뿐만 아니라 깊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과, '음악'이란 예술의 언어로도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되어 짐을 통해 화가가 되기 전부터 비구상회화를 지향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1896년 법률학 교수로 초빙됨에도 불구하고 뮌헨의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뛰어난 사실적 묘사력을 보여 주었으나 아카데믹 분위기를 싫어하여 젊은 화가들과 《팔랑스》란 그룹을 조직하여 그 선봉에서 새로운 표현을 추구한다. 또한 "나의 그림을 나쁘게 하는 것은 대상이다."라고 자각을 하고 화면에서 구체적인 대상의 형태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가게된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난 시대의, 정신적인 상황아래서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분석되어 내적 필연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1912년 발표된 기본개념, 정신적 전환기에 접근하는 예술 상황, 내면미, 형태, 색깔, 음의 조화와 자율 예술의 종합예술, 작품 역할과 사회에 있어 예술가의 책임 등에 대해 기술했다.

 

     칸딘스키는 뮌헨 시대에 쉽게 자리하고 있는 정신주의자로서의 종교적 강화는 신지학과의 관계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신지학이란 1875년 러시아인 브라바스키 여사에 의해 창시된 범신론으로, 신비사상을 내포한 세기말 분위기를 배경으로 고대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의 신비사상과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물질에 대해 정신적 우위를 강조한 사상이다. 정신에의 회귀를 갈구하는 추상예술가에게 신지학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1933년 파리 근교의 누이쉬르 세느에 정착한 칸딘스키는 초기의 러시아 시대(1914-1921)의 체험으로부터 바우하우스시대 말 중근동을 여행했을 때 겪은 체험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엄밀한 조사와 검증, 온갖 체험을 쌓아 올리고 일관해서 '내적 필연성'에 의해 작품활동을 집대성하는 성과를 올린다. 칸딘스키의 예술론에서 주장되는 '내적필연성'은 보링거의 '감정이입론'에서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

     "물체라는 형상은 항상 나의 내적 활동을 통해 완성된다. 이것은 모든 심리적인 것을 바탕으로 성립되며, 미학적 근거의 토대이다. 감각적인 물체가 주어진다는 것은 부조리이다.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할 수 없다. 나를 실험한다는 것은 나의 활동 즉 나의 생명을 통찰하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의견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미학자 테오도르립스의 감정이입론과 관계를 맺고 있다. 립스는 대상의 상태, 즉 투시를 동반한 물체에 관하여 논의 하였다. 왜냐하면 투시를 물체의 정신적인 영역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립스의 판단은 칸딘스키에게 영향을 끼쳐 내적 세계와 예술의 정신성이라는 칸딘스키의 예술관을 확립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3. 칸딘스키의 작품 분석

    칸딘스키는 직감적인 경험을 합리화시킴으로써 추상미술의 영역을 다져나갔다. 직감적 경험이란 인간과 자연의 내적인 관계를 기초로 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예술가는 이 과정에서 발산되는 감정을 퍼뜨려야 한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에게 형태와 색채를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는데, 이것은 내적인 특성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자연스럽게 모든 대상에서 내적인 요소를 끄집어내도록 유도되고, 이렇게 표현된 색채와 형태는 각각의 내적 표현으로 저절로 추상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치이다.

 

    여기에서 칸딘스키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형과 색 자체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보편과 편견의 시각에서 벗어난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하여 회화요소의 총체적인 해방을 꿈꾸었던 칸딘스키는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 추상미술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이러한 개념의 실현은 전통적인 방법을 넘어선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칸딘스키는 외면만이 아닌 내면의 모습을 간파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이것은 화가가 내적인 세계를 접할 때 비로소 풍부한 내용을 구사 할 수 있게되고 감상자에게 그만한 내적 긴장감을 전할 수 있게 된다는 이치와 연결되고 여기에서 칸딘스키는 내적 긴장감이란 인간의 감정과 직접 소통되는 매개체로써 감상자에게 한 층 더한 감동을 전달하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논리는 조형언어의 출현을 예시하기도 한다. 조형언어는 추상세계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은 넓어진 시야와 사상의 범주를 표현 가능하게 한 현대미술의 일등공신이다. 현대회화는 구체적인 형태 없이도 얼마든지 사상을 전달할 수 있고 목적에 합당한 미술품을 완성할 수 있다.

 

     20세기초 등장한 추상세계는 회화에 극도의 주관적인 세계를 펼쳐 감동과 정신 세계라는 관념적인 것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칸딘스키의 추상은 인간정신을 대상이라는 존재로 깨닫는데서 출발한다. 칸딘스키는 색채의 현상을 관찰하여 색의 특정한 활동, 색의 밝기와 관련된 힘, 색의 병렬, 혼합과 변형 등에 관해 분석하여 '내적 필연성'을 증명하였다. 그래서 칸딘스키는 '내적 필연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회화양식을 거두고 예술의 정신성을 믿고, 추상형태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다. 영혼의 공명을 위하여 감동적인 형상을 창출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전 생애를 걸쳐 고집한 그의 추상시각과 작업이 대변한다.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의 전개는 흔히 다섯 단계로 구분되는데, 이는 청년기와 그룹 《청기사》시기, 그리고 모스크바와 바우하우스시기, 마지막으로 파리 체류 기간이다. 이러한 분류는 단순히 그가 체류했던 거주지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아니다. 신인상주의와 같은 성격의 그림에서 기하학적인 표현과 상징적인 표현으로 발전해 가는 그의 회화 변혁에서 비롯된 것이다.

 

  1) 청년기
    감성적 감성을 최대가치로 여기는 서정주의와 상징주의를 연상케 한다. 칸딘스키 초기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한결같이 색의 감정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야수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각각의 색에 부여된 색의 자치적인 에너지로 해석될 수 있고, 유겐스틸의 장식적인 성질도 볼 수 있고, 빨강에서 보라에 이르는 색의 단계적 사용과 광택 없는 표면 밋밋한 색조를 구사하는 템페라 기법도 눈에 띈다.

    칸딘스키가 첫 번째 추상작업을 선보인 1910년 이후로 독자적인 회화 요소가 구축되기 시작하여 색채의 내면적인 성격이 강조되고, 형상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됨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데 이를 칸딘스키는 <즉흥>(Improvisation), 또는 <구성>(Composition)이라 불렀다. 이러한 변혁, 즉 추상으로서의 탈바꿈에서 표현주의의 세력은 칸딘스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표현주의는 대상의 분열과 색채의 비현실적인 표현을 통하여 감성을 발산하는데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등이 주도하여 1911년 창설된 《청기사》(Der Blaue Reiter)모임 역시 이와 같은 종류로 분류 할 수 있다. 이래서 바야흐로《청기사》 시대가 시작된다.

 

  2) 청기사
    《청기사》의 이념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의 연장선상에서의 프랑스 상징주의와 러시아의 신화적인 요소를 연루시켜 볼 때 19세기와 20세기초의 유럽지성사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상징적인 요소와 전설적인 내용이 내포된 《청기사》라는 명칭 자체에서 드러난다. 그룹《청기사》시기는 최초의 추상미술을 선보인 때이다. 이 때 색채감동의 경험을 논리적으로 표현한 작품 <구성>이 완성되고 확장된 감정을 획득하기 위하여 종합 예술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물론 모든 시도는 '내적 필연성'을 기초한다. 먼저 당시에 유행했던 미술 흐름 중의 하나인 입체파와 달리 공간의 다른 단계를 끌어낸다.

    그는 대상의 재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형상은 언제나 동일한 공간 안에서 표현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형상표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긴장감의 수축과 확장으로 회화 내용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영혼은 언제나 물질인 대상에 봉사하므로 내적인 감명은 재현된 대상을 통해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투시된 공간을 표현하고자 한 입체파의 견해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탐탁치 않은 입장을 취한 셈이다. 칸딘스키에게 중요한 것은 투시된 공간이 아니라 투시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회화란 내적인 감동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에 그렇다.

    그는 감정의 동요를 이야기하며,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한 재현하기를 원하였다. 형태나 색채의 동요된 표현이 나열되면서 점진적으로 영혼에 전달되고, 이것이 곧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입장이었다.

    칸딘스키가 그룹《청기사》활동을 한 기간은 그의 예술을 통털어 볼 때 습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철학과 미학에 대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고, 야수파와 신인상주의가 남긴 업적과 풍경화를 발판으로 추상에 이르렀다. 이때 나타난 즉흥적인 주제와 낭만적인 주제는 칸딘스키가 마지막 생을 보낸 파리시대까지 계속 된다.

 

  3) 모스크바 시대
    칸딘스키가 모스크바로 돌아올 때, 당시 러시아에서는 구조주의와 절대주의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고, 칸딘스키는 개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 시기에 칸딘스키의 회화 양식은 기하학적 표현으로 변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 기하학적인 표현방법은 훗날《바우하우스》를 거치면서 체계화되는데, 이는 단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주장에 칸딘스키가 동조하지 않았을 뿐이지, 표현방법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모스크바 시대에서 눈여겨볼 점은 칸딘스키의 낭만주의적 작품시대가 끝이 났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기하학적인 형태가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 양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는 대략 1920년부터 1921년까지의 일이고, 1922년을 기점으로 칸딘스키 회화양식은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즉 기하학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조형적 시각으로써 논리적이고 체계화된 규율이 그의 화면을 지배하기 시작함을 말한다.

    결국 칸딘스키는 기하학적인 표현을 통해서 회화 양식의 탈바꿈을 시도했다. 초승달 모양, 마름모꼴, 날카로운 각과 반달, 원 등으로 칸딘스키는 기하학적인 순수형태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등장하게 시작한 기하학적인 양식은 《바우하우스》를 거치면서 더욱 논리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발전하게 된다.

 

  4) 바우하우스 시대
    음악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시켜 주는 것은 화음이다. 칸딘스키는 이 같은 음악적 화음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회화 역시 음악의 화음처럼 전체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양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칸딘스키는 기하학적인 표현으로 정돈된 회화 언어의 창출을 시도한다. 당시 《바우하우스》는 예술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화려하고 장식적인 예술에서 해방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견해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목적성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였고, 그 결과 기하학적인 표현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는 산업화된 사회에 걸맞게 미술교육에도 변혁이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에 의해 창립된 미술학교이다. 1922년 《바우하우스》에 초빙된 칸딘스키는 나치스가 강제로 해산시키는 1933년까지 이곳에 머문다. 1920년에 등장한 소재중 원은 칸딘스키 그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나는 원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말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경우지만, 원은 말보다 더 강하게 나를 끌어당긴다. 그것은 원이 수용하고 있는 강한 내면의 에너지와 가능성 때문이다." 라고 칸딘스키는『회상』에서 언급하고 있다. 원은 칸딘스키만의 독창적인 상징세계였다.

 

  5) 파리체류시대
    칸딘스키가 마지막 생을 보낸 곳은 파리이다. 이곳에서 펼친 그의 작업은 공중에 가볍게 떠있는 것, 또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회전하는 것과 같은 모티브로 구성된다. 이것은 선호하는 대상이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변함에 따라 칸딘스키가 점차 더 추상적인 시각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러한 성향은 깔끔하게 정돈된 상징적인 요소를 맞이하게 된다. 파리에서 칸딘스키는 고대기념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상형문자와 같은 표현을 한다. 예를 들면, 채색된 원, 삼각형, 곡선, 서로 상반된 방향, 무게, 운동 등의 상징적인 역할을 화면에 부여하고 있다. 칸딘스키는 이렇게 각각의 요소들이 갖는 상징성에 따라 화면을 구성하고 계획했다. 나름의 조형언어 문법이 정해지고 이를 화면에 대입시켜 삽입함으로써 완성되는 칸딘스키의 말기 작업은 그의 조형의식을 상기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치밀하게 짜여진 설계도를 떠올릴 정도로 칸딘스키의 세밀한 공간감각과 색채감각을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생애와 다양하게 변천되는 작품세계에서 일관되게 주장된 내적 필연성의 형성과정, 기본 개념을 살펴보고 칸딘스키가 20세기 현대서구미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시대별, 표현방식에 따라 고찰해 보았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내적 가치의 표현과 순수성의 발현이다. 이는 현대회화의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 태도이며, 단순한 모방적 재현을 벗어나 추상적 형태를 통해 내적 정신을 표현한다.

 

    칸딘스키는 물질의 배후에 있는 정신적 실재성인 내적 필연성을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 계속 강조하였다. 즉 모든 대상들은 고유한 생명과 또 거기에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작용을 가진 존재이며, 예술가는 이 심리적 작용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심성을 그 많은 결과들에서 차단함으로써 그들에게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바로 여기에서 내적 필연성이 충만해지며 비대상회화라는 추상미술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적 필연성은 예술의 외적 필연성으로부터 해방과 자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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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미학 (2) 2009.11.26
모더니즘의 미학 (1) 2009.11.26
재미있는 그림 읽기 2009.05.21
창조적 인간과 기능적 인간 2009.03.12
'앎'에 대하여... 2009.03.05
피카소의 어록~ 2008.06.28
보들레르 미술비평과 시 2008.05.19
국립현대미술관 제4전시실 '한국현대미술' (2008년 4월) 2008.04.21
국립현대미술관 제3전시실 '인간·존재','자연·원형' (2008년 4월) 2008.04.21
현대미술비평과 포스트모더니즘 ; 다원주의(Pluralism) 미술론 2008.04.04
케테 콜비츠 (K the Kollwitz) 의 논문 2008.03.05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의 조형이념 2008.03.05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의 예술세계 2008.03.03
"기호학"에 대한 석사논문 2008.03.03
데 스틸 (De Stijl) 2008.03.03
개념미술 (Conceptual Art) 2008.03.01
미래주의 2008.02.28
사실주의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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