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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03, 2008
  • 48499

 "기호학"에 대한 석사논문    (한남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최윤정님의 석사논문)

 Ⅰ서론

  예술은 이미지의 형상(形象)적 인식(認識)이며 예술 작품은 구체적인 형상의 창조(創造)이다. 이 형상은 시각이미지로 구현(具顯)되어 직접 감상자의 감각(感覺)이나 상상력에 호소(呼訴)하므로 논리적 사고체계 이전에 먼저 그의 감정을 동요시켜 감동을 받게 한다. 오늘날의 미술은 더욱 더 주관주의(主觀主義) 회화로 흐르며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과 사상(思想)을 표현(表現)한다. 이러한 주관주의 회화는 '나'를 객관화(客觀化)시키는 요소로 작가 자신이 표현의 주체자가 되어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대한 의도를 상징(象徵)적 체계로 나타내는 것이라 할 때 더욱 그 개성(個性)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형식추구(形式追求)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형식주의자들은 재현(再現)적인 요소 일체를 예술로부터 배제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본질(本質)'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예술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소극적인 태도의 예술, 즉 '예술을 위한 예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은 단지 예술가의 자족(自足)에 그쳐서는 안된다. 예술가는 외부의 가시(可視)적 세계 속에 아직 존재한 적이 없는 하나의 리얼리티(Reality)를 세우되, 인간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즉 예술의 언어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의 대상은 형이상학적인 관념(觀念)에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념들에 대한 자신의 정서반응을 전달하는 것이다.
  현대 미학의 특징중의 하나는 미학적 문제의 해명에 인접학문의 성과가 도입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예술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에는 종족학과 인류학, 예술창작 및 지각과정(知覺科程)의 문제에는 심리학의 성과가 활용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술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언어학과 기호론(記號論)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예술을 언어모델로 고찰하게 해줌으로써,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커뮤니케이션의 매체(媒體)로서의 예술의 여러 측면을 해명(解明)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작품을 해석한다고 할 때, 이미 작품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함의(含意)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다의적(多義的)이고 중의적(衆意的)인 의미들이 객관적인 기호로서 고정된 것을 '상징(Symbol)'으로 정의하고, 해석의 범주를 상징해석(象徵解釋)으로 규정(規定)하고자 한다. 즉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작품 속에 내재된 상징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작품이 말하고 있는 세계를 열어 보이고자 함이 본 연구의 목표이다.
  본고에서는 보편적으로 정의(定意)된 개념(槪念)들, 객관적인 사실(事實)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그에 따른 이미지의 형상화(形象化)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상징적(象徵的) 표현을 연구하려고 한다. 현실의 재현(再現)이 아닌 상상력을 통하여 비가시적(悲歌示的) 영역을 형상화하는데 있어 색채(色彩)와 형태(形態), 선(線)과 면(面) 등의 조형언어(造形言語)가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觀點)에서 어떤 상징적 의미를 내재(內在)하고 표현(表現)되는지 '예술상징(藝術象徵)'의 개념(槪念)을 빌어 설명해보고자 하였다.  

 

 Ⅱ 본론

  예술작품을 상징(象徵)으로 본다는 것은, 작품은 단순한 사물(事物)과 구별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바, 다의적(多義的)인 상징물(象徵物)로서 무엇인가를 함의(含意)한다는 <표상론적(表象論的) 입장>1)이 전제(前提)되어 있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세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사물, 사건, 혹은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느낌이나 사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되며, 예술 감상자들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진리(眞理)를 인식(認識)하게 된다. 예술작품은 물리적으로는 다른 사물과 다를 바 없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보아 완전히 다른 존재적(存在的) 구조(構造)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은 단순히 관찰(觀察)과 측정(測定)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밝힘으로써 전모(全貌)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의 출현이나 그에 대한 관심의 역사를 말하자면 아마도 인류의 여명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것이다. 그 만큼 상징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연관성(聯關性)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상징에 대한 담론(談論)이 하나의 이론적 덩어리로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서구 사상사(思想史)에서 볼 때 아마도 18세기 중엽의 낭만주의(浪漫主義) 사조(思潮)에서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2) 계몽주의적(啓蒙主義的) 합리주의(合理主義)와 고착화(固着化)에 대한 반작용(反作用)으로서의 낭만주의 사조에서 상징이 주된 관심으로 부상(浮上)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偶然)이 아니다. 당시 상징을 둘러싼 분위기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심미적(審美的)이며, 과학적(科學的)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측면(側面)에서 보다 경도(傾倒)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징 자체의 논리나 문법이 부재(不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징은 명백히 개인이 아닌 집단, 즉 문화(文化)의 산물(産物)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이미지를 기호(記號)로 간주(看做)하는 것의 장점은 그림을 원래대로 몇몇 다른 기능에 의해 도구적(道具的)으로 본 결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역 속에 다시 자리함으로써 이미지를 사회로 환원(還元)되는 담론적 작업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화가는 사회의 인식 약호(略號)들을 익히고 그것들의 구속(拘俗)을 받으며 활동한다. 그러나 반면 그 약호들은 새로운 기호 조합들의 정정과 나아가서는 담론적 형성에 있어서의 진화(進化)를 가능케 한다. 이때 그림의 의미화작용(意味化作用) 작동 결과는 참신하게 갱신된 담론의 흐름으로서 사회 속으로 재순환(再順換)된다. 예술작품은 과학언어와는 달리 명료성(明瞭性)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은닉(隱匿)되고 숨겨진 의미를 다루고 있으며, 이 부분이 예술의 본질(本質)을 이루고 있다.   
 
 1. 새로운 개념 - 상징주의
    근대미술에서 세잔느를 포함한 몇몇 화가들의 조형이념(造形理念)은 결국 인상주의(印象主義)를 초월(超越)한 무엇이 있는가 라는 물음과 중복된다. 그런 의미에서 1880년대는 인상주의에서 다음 조형이념으로 넘어가는 계기(繼起)가 나타난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주의 이후 서로 독자적인 창작활동을 펼친 쇠라, 반 고흐, 고갱의 공통점은 근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상징주의적 분위기를 표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886년은 반 고흐가 파리에 도착한 해이자 쇠라가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도판 1)를 최후의 인상주의의 마지막 전에 출품한 해이며 고갱이 처음 브르타뉴로 간 해이다. 이 해는 지금까지 언급한 대로 인상주의 이후의 여러 조형이념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분수령이 되는 지점이며 고갱과 상징주의(象徵主義)에도 중요한 해이다. 1886년은 장 모레아스(Jean Moreas, 1856-1910)가 <상징주의 선언 Un Manifeste Litteraire, Le Symbolisme>을 발표한 해로 상징주의가 문학을 포함한 19세기 말의 여러 예술운동의 저항이념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징주의가 19세기말 미술의 일반적인 분위기라고 해도 그 출발은 정통적(傳統的)이고 본질적(本質的)인 물음에서 시작된다. 상징주의는 이 시대에 처음 등장한 이념(理念)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거의 상징의 파악을 기본으로 논리를 진행해 왔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의 형성(形成)과 해석(解釋)을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는 재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19세기 말의 상징주의란 특별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서양미술사에서 19세기 말의 상징주의는 다른 시대의 상징주의와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가? 상징주의가 낭만주의와 연속적인 흐름을 갖는 것만은 확실하다. 두 양식의 주제의 연속성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指摘)하는 대로이며, 따라서 상징주의는 인상주의의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인 경향(傾向)에 대립(對立)해서 지속적(持續的)으로 나타났던 또 하나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세계의 외관(外官)을 재현(再現)하려는 욕망을 포기한 미술(실제로는 이러한 목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미술)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과학적 방법3)의 신봉자들에 의해 갑자기 '발견되었다'. 일본에서 수입된 일본판화가 후기 인상파 운동 전체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회화란 현실세계의 외관의 재현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일 수 있음을 - 현실세계의 외관과는 겨우 유사성(類似性)을 지닐 뿐인 어떤 것일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궁극적으로는 동양미술에 의해 시인(是認)되었지만, 고갱(도판 4)의 작품에 입각하여 세뤼시에(Paul Serusier)4)가 공식화(公式化)한 상징주의 이론은 나중에 반 고흐5)의 작품을 포함하게끔 확대(擴大)되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현실적인 재현은 첫째가는 중요성이 아니다. 예술가는 외관의 밑바닥에 있는 어떤 것, 정확히 재생(再生)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현실이 될, 조형적인 상징을 추구한다. 이 이론은 현대미술의 온갖 발전에, 지금 우리가 대하고 있는 모든 복잡성(複雜性)에 문을 열었다. 미술의 현대적인 동향과 그 이전의 5세기 동안 보급되었던 전통 사이의 전반적인 차이는, 미술의 목적이 묘사(描寫)라는 것에서 상징(象徵)하는 것으로 대체(代替)된 데 있다는 것이다. 고갱은 "회화에서는 음악에서 그렇듯이, 묘사보다는 오히려 암시(暗示)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쓰고 있다.

  현대 인류학 전통은 경험적 방법론을 통해 낭만주의적 상징연구의 한계를 지양하면서 특히 상징이 발생하는 문화적 전통과 맥락을 강조해 왔다. 가령 말리노프스키6), 터너, 메리 더글라스7) 등은 기능과 역할 혹은 사회 구조의 관점에서 특정한 민족지학적 맥락과 관련된 상징 이해에 주목했다. 심리학이나 사회학 전통에서 보여준 상징 이해 역시 기본적으로 선험적 방법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인류학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심리학의 경우 상징 형성에 작용하는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8) 반면, 사회학에서는 상징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역할 및 그 결과에 주목한다.9)는 점에서 다소간 시각상의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경험적인 연구 경향은 비록 상징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상징에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특히 심층 심리학의 발견은 추상파라든가 초현실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낭만주의의 퇴조이래 퇴색했던 일반인의 상징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 상징으로서의 작품

  1) 특수(特秀) 언어(言語)로서의 상징(象徵)의 개념(槪念)
  상징(象徵)을 하나의 특수언어(特秀言語)로서 정의하고, 상징의 개념을 다른 언어양태(言語樣態)들과 구분하여 상징창출(象徵創出)의 계기와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랭거의 상징이론을 중심으로 상징의 개념을 고찰(考察)하고, <예술상징>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랭거는 정신 활동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활동은 본질적(本質的)으로 상징성(象徵性)을 지닌다고 믿고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상징하는 형식(形式)들의 창조(創造)"라고 정의한다. 그는 카시러(E. Cassirer)의 『상징형식의 철학』을 좇아서 상징의 주된 기능을 '인식대상의 창조' 혹은 '지각(知覺)된 경험(經驗)의 명료화'에서 찾고 있다. 즉 상징은 지각된 경험을 명료화시킨 결과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서 관념(觀念)이나 개념(槪念)을 소통(疏通)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는 관념이 명료화되는 과정을 '변형(Transformation)'이라고 부르는데, 변형(變形)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상(Abstraction)' 작용이다. 즉 '상징이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추상(抽象)을 행할 수 있는 일종의 고안품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상징은 추상을 수단으로  해서 인간의 '감정(feeling)'10)을 표현한다.

  랭거는 상징화(象徵化)의 과정을 우리에게 지각(知覺)되는 현실(現實)의 논리적(論理的), 구조적(構造的) 모습들의 '투사'(Projection)로서 설명한다. 그는 "형식적(形式的) 유사성(類似性) 혹은 논리적 구조의 일치는 상징과 '상징이 뜻하는 것'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상징과 상징화된 대상은 반드시 공통된 논리적 형식을 지녀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똑같은 논리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서로 다르게 구현되었을 경우 이를 우리는 투사작용의 기반이 갖추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상징 그 자체는 흔히 상징된 것의 <투사>11)로 불린다. 가장 쉽게 지각되는 투사작용(透寫作用)의 하나는 무언가 불분명한 것, 혹은 분석(分析)을 회피(回避)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투사작용에서의 상징은 지시하는 대상의 형식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즉 '상징'과 '상징되는 것' 사이에 유사성을 추구하되 그것은 일종의 <동형구조同形構造>12)를 갖는 유사성(類似性)이다.

  랭거는 상징의 개념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먼저 기호(旗號)와의 차이점을 구별(區別)한다. 그는 기호를 <자연적 기호>와 <인공적 기호>로 나누는데, <자연적 기호>는 '자연(自然)의 변화 혹은 징조(徵兆)를 통하여 그 배후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다. <인공적 기호>는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진 신호(信號)를 말한다. 이러한 기호는 자연적 기호이든 인공적 기호이든 기호와 대상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매우 단순하여 '일대일 대응관계(one-to-one Correspondence)'를 이루고 있다. 즉 하나의 기호에는 그것에 대응(對應)하는 주어진 대상이 있으며, 그것에 대응하는 행동이 반응(反應)된다.
  이에 반해, 상징(象徵)은 기호(記號)와 같이 직접적(直接的)인 반응을 일으키거나 대상을 직접 대신하여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개념'(Conception)을 운반해 준다.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말은 그것의 대상에 적절한 행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다만 관념적(觀念的)으로 생각할 뿐이다. 상징이란 대상의 대용물(代用物)이 아니라 대상의 개념(槪念)에 대한 매개물(媒介物)이다. 다시 말해, <기호의 기능>을 ①주체(Subject) ②기호(Sign) ③대상(Object)의 3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면, <상징의 기능>은 ①주체(Subject) ②상징(Symbol) ③개념(conception) ④대상(Object)의 4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 즉 개념(槪念)의 유무(有無)에 따라 기호와 상징은 차이가 있으며, 상징이 단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개념이지 대상 자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신호는 '물리적(物理的)인 세계'에 속하고 상징은 '의미意味)의 세계'에 속하고 있으므로 기호는 특정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신호(信號)로서의 대리자극(代理刺戟)이지만, 상징은 행동과는 관계없이 외부세계에 관한 것을 개념으로 마음 속에 그리는 사고(思考)를 작동시키기 위한 간접화(間接化)된 대리자극이다.13) 

 

  상징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기호와 구별되는 일반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상징>은 무엇인가를 대변(代辯)한다.
  (2) <상징>은 추상화(抽象化) 과정을 통해서 지각(知覺)된 경험(經驗)을 명료화(明瞭化)하고 인간의 감정(感情)을 표현한다.
  (3) <상징>과 '상징된 것' 사이에는 동형구조(同形構造)를 갖는 '유사성(類似性)'이 존재(存在)한다.
  (4) <기호>는 행동과 결합(結合)된 '실천적(實踐的) 신호(信號)'이고, <상징>은 사고(思考)와 결합 된 '비(非)실천적 기호'이다.
  (5) <기호>는 지시대상(指示對象))과 '일대일(一對一)'로 대응(對應)하지만, <상징>은 지시대상과 대응이 유동적(流動的)이며 '일대다(一對多)'로 나타난다.
  (6) <기호>는 지시대상과 결합하여 그것과 생성소멸(生成消滅)을 같이 하지만, <상징>은 지시대상이 없어져도 그것으로부터 독립(獨立)하여 존속(存續)하면서 의미를 갖는다.
  (7) <기호>는 인위적인 제도(制度)로서 어휘나 문법이 명확(明確)하게 작용(作用)하지만, <상징>은 어휘나 문법이 명확하지 않거나 제도적(制度的) 조건을 넘어선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의미를 지닌다.

 

   2) 표상(表象)으로서 상징(象徵)의 특징(特徵)
  랭거는 의미론(意味論)과 논리학(論理學)에서의 타당(妥當)한 체계와 감정의 문제에 대한 체계가 서로 다름을 주장하면서 '언어(言語)'(Language)를 요소(要所)로 해서 이루어지는 <논술적 형식Discursive Form>과 '회화(繪 )'(Picture)를 요소로 하는 <표상적 형식 Presentational Form> 즉 <비논술적 형식 Non-Discursive Form>을 구별하고 있다. 그는 논리학에 사용되는 과학적 언어는 그 추상성을 통해 보편(普遍)을 획득함으로서 개념분석에 있어서 최고의 지위(地位)를 얻게 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술적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정서적 감정이 존재하고, 이것에도 인식적(認識的) 성격을 부여하여 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고 하였다.

 랭거는 비논술적 형식의 예로서 회화(繪畵)를 들고 있는데, 회화도 언어처럼 대상의 여러 가지 구성요소를 나타내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요소들은 독립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상화나 사진을 이루고 있는 밝고 어두운 면적들은 그것들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각적 대상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를 충실히 나타낸다. 그것들은 세부(細部)를 위한 세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명암(明暗)의 대조(對照)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이처럼 아주 많은 요소를 갖는 상징작용(象徵作用)은 기본단위(基本單位)로 쪼갤 수 없다. 즉 비논술적 상징은 그들의 성분들이 항상 동시적(童詩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시각적 구조를 결정하는 관계는 단일한 시각행위(視覺行爲) 속에서 파악(把握)된다. 또한 그들의 요소는 독립해서는 단지 얼룩에 불과하며, 전체 그림 속에서 조화(調和)됨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요컨대 비논술적 상징의 의미는 전체의 의미를 통해서만, 또 완전한 구조 속에서 그들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된다. 상징으로서의 그들의 이런 기능은 그들이 동시적(童詩的)이고 완전한 현실(現實) 속에 포함된다는 사실에 있다. 랭거는 이런 종류의 의미론(意味論)을 <표상적(表象的) 상징작용>이라 하여 언어 즉, <논술적(論述的) 상징작용>과 구별(區別)하고 있다.

  우리가 해석할 대상인 미술작품은 <시각상징 Visual Symbol>으로서 <표상적(表象的) 상징>의 속성(俗性)을 가지고 있으며, <논술적 상징>과 구별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논술적 상징>이 일반적으로 외계(外界)에 관한 객관적(客觀的)인 인식을 제공해주는 '언어적(言語的) 상징'인 반면에, <표상적(表象的) 상징>은 직관적(直觀的)인 형태로 감정이나 정서와 같은 인간의 내면적(內面的)인 감정세계의 상태를 표현하는 '비언어적 상징'이다.
  (2) <논술적 상징>의 특징은 그 논리 구조가 '약정적(約定的)'14)인데 반하여, <표상적 상징>은 그 논리 구조가 지시대상의 성질이나 상태와 일정한 '동향성(動向性)' 내지 '유사성(類似性)'을 갖는다.15)
  (3) <표상적 상징>의 유사성은 형태와 표시내용이 서로 겹치는 협의(狹義)의 '모사적(模寫的) 유사성'에만 한정되지 않고, 주관적인 '감정의 유사성'까지 포함한다.16)
  (4) 상징과 감정내용의 대응은 상징의 직관적인 형태에 입각하여 내재적(內在的)으로 성립한다.17)
  (5) <표상적 상징>이 묘사하는 내면의 감정세계는, 논리구조의 약속적(約束的) 구성에 의한 추상의 세계와는 반대로 상징의 제작자(製作者)가 처한 맥락(脈絡)에 따라 변화하는 미묘한 뉘앙스와 독특한 정서적 생동성(生動性)을 가진 주관적 세계이다. 따라서 그것은 논술적 상징인 "말로 대체(代替)할 수 없는 함축성(含蓄性) 있는 의미"를 가진다.18)
  (6) <표상적 상징>은 통사론적(統辭論的) 측면에서의 논리구조만이 아니라 의미론적(意味論的) 측면에서의 정서적(情緖的) 의미의 표시(表示)에도 그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감정표현의 논리는 언어와 같이 명확한 약속은 가질 수 없어도, 역시 그 자체의 독특한 문법(文法)을 갖는다.19)
  (7) <표상적 상징>이 표현하는 가상(假想)의 감정은 생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한 개의 선(線)으로 객관화(客觀化) 될 수 있으므로, 언어가 가능적(可能的) 의미 넓은 세계를 가지는 것처럼 넓은 상상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3) <예술상징>의 개념(槪念)
  랭거는 <예술상징 Art Symbol>과 <예술 안에서의 상징 Symbols in Art>분명하게 구별함으로써 상징(象徵)의 층위(層位)를 두고 있다.
  <예술 안에서의 상징>이란 예술작품 내(內)의 개별적(個別的) 요소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작품 안에서의 부분적(部分的) 요소인 '후광'이나 '새끼양'이 '성스러움'이라든지 '사랑'을 상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예술상징>이란 전체(全體)로서의 하나의 예술작품을 말하는 것으로서, <예술 안에서의 상징>을 포함(包含)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좀더 포괄적(包括的)인 개념이다. 그것은 전체(全體)로서 예술 전체의 기능이고, 단일한 불가분(不可分)의 상징이며, 예술적 가치 자체인 '내포적(內包的) 의미'(Import)20)를 현시(顯示)하지만,부분적인 상징들의 조합(調合)은 아니다. 그것은 유기적(有機的) 통합(統合), 표현적 형식으로서 하나의 전체, 즉 '게슈탈트'(Gestalt)를 이룬다.

  반면에, <예술 안에서의 상징>은 말에 의해 진술(陳述)이 가능한 언어와 같은 의미론적 수준에 있으며, 문자를 통한 의미를 갖고 작품의 제재(題材) 내지 주제(主題)를 형성한다. 즉 <예술 안에서의 상징>은 그것만이 인식(認識)될 수 있는 개개의 '상대적(相對的) 이미지'이지만, 그들의 유기적(有機的) 전체로서 <예술상징>은 문자를 통해 표현될 수 없는 '절대적(絶對的) 이미지'이다.
  <예술상징>이 <예술 안에서의 상징>과 같은 의미론상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의 중요한 의미는, <예술상징>은 표현적(表現的) 형식으로 그 자체(自體)이고 그 자체를 초월(超越)한 그 무엇도 전달(傳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랭거는 예술작품이 언어상징에 비교해 특수한 파생적(派生的)인 의미에서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직접적(直接的)인 지적(知的) 이해(理解) 또는 직관(直觀)을 위해 경험을 형식화(形式化)하고 객관화(客觀化)하지만, 논술적 사고를 위해 개념(槪念)을 추상화하는 것은 아니다. 즉 <내포적(內包的) 의미>는 그 자체 내에서인지(認知)되는 것으로서 순수한 상징이 갖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상 일반상징과 구별을 시도한 랭거의 <예술상징>의 개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술상징>은 언어(言語)의 논술적(論述的) 특성을 갖는 순수한 상징과는 다른 인간의 내적 생명인 감정의 상징으로서 '표상적(表象的) 형식'을 이룬다.
  (2) <예술상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형식인 '내포적(內包的) 의미'이고, 이것은 어떤 지시적(指示的) 의미를 갖지 않는 '형식(形式)-내용(內容)의 통합체(統合體)'이다.
  (3) <예술상징>은 전체(全體)로서의 예술작품의 의미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술작품 내의 부분요소들을 이야기하는 <예술 안에서의 상징>과 구분된다.
  (4) <예술 안에서의 상징>은 그것만이 인식(認識)될 수 있는 개개의 '상대적(相對的) 이미지'이지만, 그들의 유기적(有機的) 전체로서 <예술상징>은 문자를 통해 표현될 수 없는 '절대적(絶對的) 이미지'이다.

 

   4) 예술적 지각(知覺)과 직관(直觀)
  랭거의 상징이론은 '약정'(Convention)에 의해 명백하게 혹은 은밀하게 자체 이외의 다른 무엇을 의미해 주는 기존의 상징개념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왜냐하면 <예술 안에서의 상징>이 '후광'과 같이 고도로 관례화(慣例化)된 실체로서 오랜 전통 속에서 반복(反復)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반해, <예술상징>의 특성은 인간의 '감정에 관한 도상성((Iconcity)'이다.
  약정(約定)이 없는 도상성(圖上性)이란 주관적(主觀的)이고 직접적(直接的)인 지시(指示) 대상이 없어 해석자(解釋者)를 당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가 해석하려는 작품의 대부분은 약정이나 관습에 의한 상징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표현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랭거는 언어는 합리적(合理的) 사고에 의한 상징적 형식으로 담론(談論)의 구조, 즉 추론적(推論的) 형식에 의해서 합리적 인식의 형식들을 표현하지만, 논리화되지 않은 정신생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형식들, 혹은 감정의 삶이라고 불려지는 것을 다른 상징적 형식이 필요함을 역설(逆說)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이 예술의 특성이며 예술의 본질(本質)이자 표준(標準)이라고 생각한다.21) 그래서 예술작품은 우리 감정의 역동적(力動的) 형식과 일치하거나 닮은꼴인 일종의 표현적 형식이며, 작품은 감정을 표현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표현적 형식은 어떤 '투사(透寫)'의 규칙을 통하여 자신과 일치하게 되는, 곧 표현적 형식이 되는 어떤 복합적(複合的)인 형식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랭거가 말하는 상징이란 오직 우리에게 지각(知覺)되는 바로서의 어떠한 형태일 뿐이며, 이때 상징의 의미는 '동의'(Agreement)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 그 자체에 내재(內在)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해석 또한 지적(知的) 해석이라는 경로를 거쳐 간접적(間接的)으로 전달되는 순수상징(純粹象徵)의 의미와는 달리, 예술적 의미에 대한 직접적(直接的) 지각, 즉 '직관'(Intuition)22)에 대한 해석방법이 요구된다. 랭거는 직관(直觀)의 문제가 예술상징이론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랭거는 예술적 내용에 대한 지각(知覺)은 직관적(直觀的)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예술작품의 본질적 내용은 추론적(推論的) 언어로는 결코 진술(陳述)될 수 없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하나의 표현적 형식, 즉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단순한 상징화 작용의 산물은 아니며, 더욱이 상징들의 인습적(因襲的) 체계의 산물이 아니다. 물론 예술에는 인습들이 존재하지만 이 인습들은 상징사용이라는 인습들로 단순히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 상징과 상관되는 사실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회화, 조각, 건축, 시, 소설, 희곡, 음악은 생생하고 정서적인 복잡한 내용을 거느리는 단일한 하나의 상징이다.
  (2) 이러한 상징들을 구성하고, 단계적으로 지각(知覺) 속에 그 의미를 구축(構築)하는 의미 있는 인습적(因襲的) 단위(單位)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따라서 예술적 지각(知覺)은 언제나 총체적(總體的)인 내용에 대한 직관(直觀)과 더불어 출발하며, 형식의 표현적 체계화(體系化)가 명료해지는 것을 명상함으로써 증가한다.
  (4) <예술상징>의 내용은 추론(追論)에 의해서는 해석될 수 없다.

 

  Ⅲ 결론

  20세기의 예술가들은 형상(形象)과 공간(空間)의 표현에 있어서 어떤 유일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서양미술사 전체에 걸쳐 풍부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참고작품과 함께 역사적으로는 매우 다양한 표현방식이 존재해 왔음을 알고 있는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는, 그러한 접근방식 가운데에서 자신의 표현적 요구에 가장 적합한 양식(樣式)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예술가가 작품의 제작에 있어서 그 시대의 예술적 관습(慣習)에 순종한다면, 그는 조형요소의 실험과 그 표현적 가능성에 있어서 한계에 부딪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있어서 예술가의 주체의식과 제작기법은 전통에 의해 결정된 안일한 유형(遺形)만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는 모든 예술가가 자기 나름대로의 시각적 언어를 선택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어떤 특정적인 표현방식에 구애됨이 없이, 조형요소의 표현적인 활용방법과 그 결합방식을 자유롭게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적 관계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은 중세 및 근세의 도상(圖上)들과는 달리, 현대의 물질(物質)은 대량생산을 통해 그 자체로 존재의미를 갖는다. 하나하나는 무수한 익명(匿名)의 물질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물질은 집합(集合)으로서 기호성(記號性)을 지닌다. 이때 예술가들이 할 일은 무수한 물질의 기호성을 작품 속에 들여와 그 기호의 의미를 규명해주는 일이다. 미술이 모티브인 물질과 접하게 될 때 출발점이 되는 것은 물질의 기호성이며, 이 점에서 미술은 형태를 바꾸면서도 이미지의 사슬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스퍼 존스(도판 14, 15)를 잇는 팝 아트(도판 16, 17) 화가들은 대중매체가 대량으로 방출하는 유사(類似)한 기호들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본인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물질의 시각적인 형상(形象)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주관적인 해석을 부여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생각에서 출발하여, 작품 표면이 복잡한 양상(兩象)을 나타내는 원인을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결과의 산물로 보기보다는, 일반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정교하고 미묘한 감정의 표현이나 고도의 정신 작용의 필연적 결과로서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당연히 다의성(多義性)이나 양의성(兩義性)을 내포하고 있으며, 겉으로 드러난 것 이외의 많은 것들이 내재된 필연적 기호로 간주되는 바, 이를 본 연구에서는 <상징>으로 정의하고자 했다. 또 <예술상징>은 일반언어의 논술적인 특징과는 구별되는 비 논술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표상적 형식>이며, 이것은 작품내의 부분요소들을 이야기하는 <예술 안에서의 상징>과 구별되는 전체적이고 불가분(不可分)의 절대적 이미지임을 밝혔다.

  내재된 정신성을 심상 체험을 통해 상징으로 표현되는 현상을 이론적 관점에서 연구함으로서,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을 형상화하는 개연성(蓋然性)을 설명하고, 새로운 창작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또한 직관적인 감성과 상상력에 의존하여 사실에서 느껴지는 심상 체험을 주관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표현하는데서 논리적·이성적인 상징의 개념이 어떻게 적용(適用)되고 표현되는지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고자 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하여 조형적 수단을 강구(講究)하는 예술가는, 반복적인 사용에 의해 이미 그 효과가 희석된 상징적 체계나 형식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止揚)해야한다.. 즉 그는 그가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내용의 중요성이 부각(浮刻)될 수 있는 새로운 조형적 언어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클레는 1919년에 '예술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 세계에 가려진 것을 드려내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본질(本質)을 탐구하는 자세는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이며, 화가는 자신의 존재를 그림 속에서 추구한다. 그림이 화가에게 귀속(歸屬)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그림 속에 있는 것이다.
 사물이나 사실에 감추어진 내면(內面)의 요소를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서, 인간의 본질과 존재성을 담고, 직관(直觀)과 감성(感性)에 의해 주관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대상을 부각시켜 그것이 더 이상 일상적인 것이 될 수 없도록, 즉 일상적인 대상이 흥미로운 것, 친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조형화(造形化)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조형화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시각(視覺)을 열어 보이는 것 또한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한다. 
 
각주-
1) 이러한 <표상론적 입장>은 하이데거의 예술철학, 랭거의 상징이론, 허버트 리드의 예술관, 낭만주의 시학 등으로 이어져 최근에는 굿맨(N. Goodman)의 언어이론 등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을 받고 있으며, 예술작품은 '표현적속성소'를 갖고 있으며, 이 속성소가 한 사물현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을 예술로 만든다는 인식론적 입장이다.
2) 상징 이론에 대한 현대적 관심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으로 평가되는 낭만주의 시대에는 시어(詩語)와 상징의 문제, 꿈과 상징의 문제, 신화-의례와 상징의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편 19세기 말엽 프랑스의 시인들(S, Mallarme, C. Baudelaire, P. Verlaine)을 중심으로 전개된 상징주의 사조 역시 낭만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징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3) 콘스터블이 회화에 있어서의 색채는 자연계에 있어서의 색채와 마찬가지로 신선하고 생생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일단 보여주자, 미술가들은 새로운 과학적인 경향에 정신을 쏟게 되었고, 그러한 경향은 마침내 쇠라나 시냑과 같은 인상주의자들의 과학적 내지는 의사(擬似)과학적인 채색법에 이르러 끝났다. (허버트 리드,『현대미술의 원리』김윤수 역, 열화당, 1996, p.41.)
4) 세뤼시에는 예술가로서는 그다지 명성이 없었으나, 고갱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을 알아냈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고갱의 작품이나 담화에서 이끌어낸 이론은 인상주의 이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상징주의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고갱 이후의 회화에 상징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여지지 않게 된 이유는, 프랑스의 당대 문학이론이 이 명칭을 가로채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허버트 리드,『현대미술의 원리』김윤수 역, 열화당, 1996, p. 43.)
5) 아를의 하숙방을 그리면서 그는 이 그림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자신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새로운 구상을 하나 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야. … 이번에는 단순히 내 침실을 그리기로 했지. 단지 색채만으로 모든 것을 해내고자 하네. 색채를 단순화함으로써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에 장엄한 양식(樣式)을 부여하려 하는데, 여기서 색채로 휴식 또는 수면을 암시하려 하네, 한마디로 말해 이 그림을 보고 두뇌 또는 상상력을 휴식시킬 수 있도록."
    " 그게 전부야. 이 밀폐된 방 속에는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가구의 굵은 선으로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휴식을 표현해야만 하네, 벽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고 거울하나와 수건 그리고 옷 몇 벌 뿐…"
    " 그림틀은 흰색이어야 할 테지… 왜냐하면 이 그림 속에는 흰색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야.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취해야만 하는 휴식에 대한 보복심에서지…"
    " 오늘 하루종일 이 그림을 다시 그릴 거야. 하지만 보다시피 이 구상은 정말 단순해. 그림자는 없애 버리고 마치 일본 판화처럼 거침없이 편편하게 색칠을 하려고 하네…"
6) 레드클리프-브라운과 마찬가지로 상징이 지닌 언어적 함의에 주목하면서 상징이나 말(words)의 기능이 생리학적 충동을 문화 가치로 전환시키는 데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보았다.
7) 레비-스트로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상징 체계와 사회 구조간의 상관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상징화의 기원과 인간 신체의 구조 및 과정을 연결시켜 고찰했다.
8) 프로이트는 꿈의 상징을 신경증적인 것 즉 억압된 것의 징후로 본 반면, 융은 상징을 자기 실현과 개성화를 위한 정신 투쟁의 표출로 보고 있다. 
9) 뒤르켐은 상징을 스스로 의미를 지닌 실재로 보는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의 견해를 거부하고 그것을 철저히 사회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상징은 사회나 집단의 투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10) 랭거가 말하는 감정은 유기적 감각으로부터 생명감, 복잡한 정서, 지적긴장에 이르는 인간의 모든 주관적 내면적 경험으로 '모든 느끼는 일체의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은 유기체로서 무의식에 일어나는 우리의 깊은 생명감을 의식하는 것이고, 그 자신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개체의 생명 깊은 것으로부터 오는 것을 파악하는 지적 활동이다. 
11)  '투사'(Projection)란 예를 들면 영사기로 슬라이드를 비춰 스크린에 상을 만든 것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감정의 관념은 투영을 통해서 예술작품으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어떤 인식할 수 있는 형식으로 예술가의 관념이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2) 랭거는 감정은 일종의 형태, 구조, 논리적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형태심리학에서 말하는 <동형구조이론the Gestalt Theory of Isomorphism>에 근거하여 주장하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과정과 두뇌 밖의 심리적 과정이 공통된 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형구조는 감정이 구조와 이 감정의 외적 표현-몸짓, 운동, 억양, 음악-의 구조 사이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는 견해가 이 이론에 근거하여 주장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에 힘입어 많은 음악가들이 랭거를 좇아 감정의 구조와 음악을 통한 동형구조가 있다고 주장한다. (Yevgeny Basin. 『20세기 예술철학 사조』 오병남, 윤자정 역, 경문사, 1989, pp.157-158.)
13) 카시러는 <신호 Signal>과 <상징 Symbol>을 더욱 명백히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징은 기호로 환원될 수 없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 기호와 상징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논의의 세계에 속하는데, 신호는 물리적인 존재세계의 한 부분이요, 상징은 인간적인 의미세계의 한 부분이다. ... 신호는 <조작자 Operator>요 상징은 <지시자 Designators>이 다. 신호는 그 자체로서 이해되고 사용될 때에도 물리적 혹은 실체적 존재요, 상징은 기능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14) 예를 들면 '식사'라는 말은 문자로서든 귀로 듣는 단어로서든 실제의 식사와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다. '식'과 '사'라는 문자를 결합하여 그것이 식사라는 것의 일반적 성질을 표시한다는 약속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약속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식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며, 실제로 그런 사람에게는 '식사'라는 말, 즉 상징이 아니라 단순한 자연음이거나 잉크자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식사'는 국어의 어휘에 관한 사전적 약속에 의해 식사라는 의미를 표시하는 상징이 된다. 그러나 똑같은 말일지라도 '산'(山)이나 '천'(川)이라는 말은 상형문자이므로 언어로서의 약속 이전에 그 문자를 상징이게 해주는 조건이 존재한다. 그것은 '山'이나 '川'이 지시하는 대상(실제의 산이나 냇물)의 지각적 이미지가 '山'이나 '川'이라는 문자와 시각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자는 대체로 이처럼 지시대상의 시각적 구조를 모방한 구성을 가진 상징이므로, 인공적 약속에 의한 논리구조를 강하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山'이 산의 의미를 표시하는 것은 '山'이라는 문자의 형태가 시각적으로 산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징은 언어라고는 하지만, 논술적 상징보다 오히려 표상적 상징에 가깝다. (기와노 히로시,『예술·기호·정보』진중권 역, 새길, 1992, pp. 75-76)
15) 모리스는 기호 매체를 크게 둘로 나누고, 그것이 지시하는 것에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매체로 <도상적 기호 Iconic Sign>, 유사하지 않은 매체로서의 특징을 <비도상적 기호 Non-Iconic Sign>라 부른다.
16)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 왜곡된 형태 속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느낄 수 있다. 또 음악의 경우, 사람들은 음의 흐름 속에서 직관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정내용은 형태는 없어도 분명히 상징의 논리구조에 감지되므로, 모종의 직관적인 애매함은 있어도 거기에는 대응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도판 6)
17) '밥'이라는 단어의 모양 안에는 그것에 대응하는 '식사'의 이미지 존재하지 않는다. '식사'의 이미지는 '밥'이라는 단어의 형태 밖에서, 약정적인 번역에 의한 대응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표상적·유상적인 상징은 그 직관적 구성 속에 그것이 의미표시하는 감정이미지가 번역 없이 대응하는 존재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은 이를 확실시하는 감정이미지가 번역 없이 대응하여 존재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은 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다. 벤제(M. Bense)가 기호를 대상에 관하여 전달하는 <對自記號 Zeichen f r Etwas>와 실존을 전달하는 <卽自記號 Zeichen von Etwas>로 구분하는 사고방식도 이와 같은 상징이원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와노 히로시, p.77)
18) 베토벤의 <운명>이라는 음악의 주제를 우리는 언어로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상징은 언어처럼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일률적인 사전이나 문법을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현시적 상징의 의미표시는 항상 제작자의 감정적 음영을 담고 있어, 반드시 언어의 경우와 같은 객관적 일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적 상징은 상징이지, 감정을 직접 표출하는 신호가 아니다. 그러므로 유한개의 요소(음표, 색면, 선, 면 등)을 조합시키는 다양한 컴퍼지션이 형식적으로 가능하다. (가와노 히로시, p.78)
19) 형태의 문법으로는 형태심리학 이론이 있다. 그것은 선이나 면의 구성이 상쾌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성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데 대한 합리적인 규칙을 부여해준다. 색채나 음의 체계적인 조합에 관해서는 색채 조화의 이론이나 화성의 이론이 있어, 그것에 의해 우리는 어떠한 색이나 음을 배합하면 어떠한 감정이 표현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결국 현시적 상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로는 그것이 가진 감정표현의 논리를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가와노 히로시, pp. 78-79)
20) 예술작품은 무형의 인간감정의 일반적 논리형식이 유형의 개별적인 상징형식에 객관적으로 투영되는 것이고, 이 상징형식이 그 자체 작품이라 하는 하나의 상징이 의미하는 내용이고 이러한 <형식-내용>
의 합일체를 랭거는 보통의 언어일반의 지시 대상으로서의 <의미 Meaning>와 구별하여 <내포적 의미 Import>라 하였다. 21) 랭거는 예술작품은 무엇인가를 재현하고, 따라서 그것의 상징적 기능을 재현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경고하며, 건물이나 도자기, 곡조 등은 의도적으로 어떤 것을 재현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라 정의한다. 작품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표현적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표현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관념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또 재현적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라면 비재현적 작품들과 똑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랭거에 있어 예술작품은 표현적 형식이며, 그것이 바로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상징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인식이란 예술작품 속에 있는 표현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22) 직관은 철학 속에서 일반적으로 주로 두가지 공통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첫째는 직관을 사실에 대한 비이성적 자각과 똑같이 일종의 <초감각 extra sensory>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것은 어떤 정보, 제시, 혹은 지식을 유도하는 다른 어떤 경험을 매개로 하지 않고 발생한다는 지식을 의미한다. (S. Langer,『예술이란 무엇인가』이승훈 역, 고려원, 1993,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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