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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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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 스틸 (De Stijl) 전개과정 및 영향

 1910년대의 유럽은 격변의 시기였다. 세계전쟁과 급변하는 가치관과 19세기 말 낭만주의의 관계들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문명에 대한 허무함과 지루한 과거의 답습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했고 그 결과 역사라는 틀을 벗어나려는 수많은 예술 - 야수파, 입체파, 다다, 초현실주의 등 - 들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개인의 자기 정체성에 얽매여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새로운 대안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완벽하게 수용하지 못하였다. 이와 달리 데 스틸은 가장 일관적이고 배타적이었으며 작가들의 작품이 거의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동질적이었다. 그만큼 데 스틸은 극단적인 이론탐구의 결과물 이었고, 당시의 사회상황도 그 성격 형성에 일조하였다.

 

 1. 전개과정

* 1917년 - 데 스틸 1호 발간
 1917년에 되그부르그는 그의 군복무를 마치면서 새로운 정기간행물의 발간에 대해서 건축가 아우드, 화가 프사르와 함께 의논하였고, 또한 몬드리안, 반 데 렉과 같은 다른 화가들과의 접촉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저술로 옮기는 용기를 얻게된다. 이들의 공통 주제는 근본적인 조화를 무시하고 수학적인 성질만이 강조되었던 바로크를 거부하였고, 이는 곧 곡선의 거부와 수직과 수평에 의해 생성되는 새로운 구성, 그리고 이 화법과 건축 사이의 관계였다.
 이 새로운 원리는 먼저 회화에서 실현되었다. 몬드리안과 되스부르그의 그림은 흰 바탕에 율동적인 상호관계에 있는 원색의 사각형들의 구성과 같은 동일한 특성을 보인다. 건축도 동시에 동일한 원리를 위해 노력하였고, 그 첫 번째 결과는 아우드의 '해변 위 산책로에 있는 빛'의 설계였다. 그러나 이 집은 지어지지 못했고, 대신에 Katwijk에 있는 Allagonda 별장과 Noordwiikerhout에 있는 De Vonk 호스텔의 일부가 되스부르그에 의해 설계되었다. 그는 기존의 실내장식 원리를 깨뜨렸고 모든 물건들은 건축구성의 논리적인 부분으로 설계되었다. 반 데 렉은 거실을 위한 가구를 설계하였고, 프사르가 뒤를 이었다.  데 스틸의 첫 번째 호에서 몬드리안은 '회화의 신조형주의'라는 제목으로 그의 생각을 수록하였고, 이 기사는 데 스틸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되었다. 이 기사는 데 스틸이 탄생하기 전 되스부르그의 강한 주장에 따른 긴 토론의 결과였다. 이것은 데 스틸의 그 시작으로부터 예술의 전통적인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운동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 1918년 - 데 스틸 제 1 선언 발표
 1918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1차대전의 말기인 이해의 11월에 데 스틸의 첫 번째 선언문이 발표된 것이다. 이 선언문은 초기의 거의 모든 멤버에 의해서 서명되었다. 아우드는 선언문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반 데렉은 그룹을 떠났다. 그 선언서는 데 스틸의 활동을 네덜란드 이외의 지역에까지 확대하고 이에 동조하는 예술가와 일반인들을 단합하기 위하여 발표되었다.

 

* 1919년
 데 스틸의 주장은 더욱더 국제적으로 알려졌고, 다른 나라와도 연결되었다. 예술가들의 작업은 데 스틸의 원리를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몬드리안과 되스부르그는 짧은 동안 캔버스를 수학적으로 정의된 사각형 체계로 분할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몬드리안은 파리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사람들과 지속적인 편지교환이 있었다. 이 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리트벨트가 그룹에 참여하여 가구 디자인과 제작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로서 다른 예술분야들과의 통합을 향한 공동작업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1920년 - 제 2 선언문
 이 시기에는 데 스틸이 좀 더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중요활동은 데 스틸과 문학의 만남이다. 그리고 데 스틸의 두 번째 선언문이 있었다.  선언문에서 되스부르그는 다다의 경향을 보인다. 이후 되스부르그는 I.K. Bonset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출간한다.

 

* 1921년
 1921년 되스부르그는 Weimar의 바우하우스에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였고, 그의 아이디어들을 성공적으로 독일에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몬드리안은 26년까지는 새로운 면의 연구보다는 화법을 더욱 완성시켜 나갔다. 프사르는 데 스틸지에 발표된 원리에 따라 기계적 극장을 계회하였고, Wils와 합작으로 몇몇 인테리어도 디자인 했다.

 

* 1922년
 되스부르그는 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다다이스트로서 네덜란드 여행을 하였다. 그에 따라 조형예술분야의 관심은 줄어들었다. 이해에 반 에스테렌이 그룹에 가담하게 된다. 되스부르그는 베를린과 베이마르에서 만난 러시아 구성주의자 El Lissitky와의 교류도 있었고 두 번의 데 스틸지는 전부 그에 관한 글로 채워졌다.

 

* 1923년 - 데 스틸 전시회
 이 해는 데스틸에게 있어서 아주 중대한 계기를 마련한 해였다. 우선 Leonce Rosenberg의 초청으로 전시회가 열린 것이고, 되스부르그와 에스테렌, 리트벨트가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시회가 열렸다는 것은 데스틸의 건축이 실제 건축 가능한 것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 1924년 - 슈뢰더 하우스, 요소주의
 1924년은 데 스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슈뢰더 하우스가 건축된다. 수뢰더 하우스는 전시회 이후 되스부르그, 에스테렌, 리트벨트 이 세 사람의 건축원리에 따라 지어진 첫 번째 집이었다. 회화에 있어서는 되스부르그가 신 조형주의의 이론을 발전시킴에 따라 새로운 결과물들이 나타났다. 그의 반구성은 새로운 방향에 따른 첫 번째 그림이다. 화폭은 대각선에 기초한 구성의 계획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데 스틸의 새로운 전개의 암시였고, 훗날 몬드리안이 데 스틸을 탈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되스부르그는 이를 요소주의라 불렀다.

 

* 1925년
 이 해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몬드리안이 데 스틸을 탈퇴한 것이다. 되스부르그가 신 조형 주의를 자기식으로 바꾼 요소주의를 제창하면서 직사각형의 구성에 대각선을 도입한데에 E따른 의견차이 때문이었다. 몬드리안에게 있어서 신조형주의의 원리는 그 자신의 존재의미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몬드리안은 대각선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되스부르그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 같다. 사각형의 캔버스를 45도 기울여서 사용함으로써 수평선과 수직선의 기본적인 표형을 유지하는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 내었다.  건축 분야에서도 몇몇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데 스틸 건축 초기의 원리를 따른 두 개의 건물이 지어졌다. 둘 다 아우드의 계획안으로 로테르담 Caf De Unie(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됨. 1997년 부분복구)과 Kiefhoek주거단지 이다.  되스부르그, 리트벨트 그리고 에스테렌에 의한 새로운 경향은 도시적인 데에로 시야를 넓혔다. 에스테렌은 도시내의 주택 하나만으로는 만족할만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체 거리의 계획에 매달렸다. Unter den Linden을 위한 새로운 현상 프로젝트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사용한 급진적인 해결책이 선호됨을 말해준다. 여기에서는 전부터 정교하고도 과학적으로 분석되어온 기능에 따라 거리의 모습을 재창조하고자 하였다.

 

* 1926년
 되스부르그는 '구성에서 반구성주의까지'라는 글을 집필하여 요소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Caf l'Aubette와 무도장의 재건, 재장식을 위임받아 이해와 다음 두 해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되스부르그의 부재로 네덜란드에서의 활동은 부진하였다.

 

* 1927년
 데 스틸이 만들어진지 10년째 되는 해로 그 동안의 성과와 데 스틸을 좀 더 가다듬고 재정열 하기 위한 방안들이 잡지 한 권을 가득 매웠다.

 

* 1928년
 요소주의 원리에 따른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프로젝트인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Caf l'Aubette가 완성되었다. 데 스틸지의 한 호에 이 시설의 여러 측면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각 부분들은 되스부르그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일부는 Arp부부가 맡았다.

 

* 1929년
 되스부르그는 Caf l'Aubette가 완성된 후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데 스틸의 활동을 강화하려 하였고 에스테렌의 도움으로 파리 근처 Meudon에 스튜디오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 1930년
 Meudon의 스튜디오가 거의 완성되었고 되스부르그는 회화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호가 되게 된 데 스틸 지에 '동시적 반구성'이란 글을 싣는다. 그는 파리에서 추상주의 원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 Abstraction-creation이란 연합체를 결성하였고 Art Concrete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 그는 또한 몬드리안을 이 그룹에 가입시키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 1931년
 Meudon 스튜디오가 완성되었지만 되스부르그는 건강상의 문제로 Davos에 머믈렀다. 이 해 3월 그는 천식으로 사망하였다. 잡지의 마지막 호는 데 스틸 설립자에 바치는 기념호로 1932년 1월에 발간되었다. 이 호는 그의 마지막 작업과  Meudon 스튜디오의 사진이 실려있고, 그룹의 초기 멤버와 현 멤버에 관한 기사도 함께 실렸다.
이렇게 데 스틸은 한 건축가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다.

 

 2. 영향

* 보편성의 추구 기하학적 형태 , 장식배제
 데 스틸의 첫 번째 선언문에는 종래의 대상 재현 미술에 있어서 개성지향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새로운 예술의 본질로서 보편성이 강조되었다. 그들이 "자연의 목표는 인간이고 인간의 목표는 양식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데 스틸 작가들은 보편성에 기반한 새로운 양식의 창조를 목표로 하였다.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양식은 명확성, 단순성, 논리성 등을 특징으로 한 것이었다. 이 같은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 기하학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데 스틸 작가들은 미술의 모든 영역에 기하 형태를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건축의 경우도 고도의 끝마무리로 명확한 윤곽선을 갖는 기하학적 구성으로 나타났다. 특히 종래의 건축에서 근본이 되었던 장식적 특성을 배제함으로써 단순하고 명확한 형태를 성취하고자 하였다. 장식적 요소는 일종의 부가물로,  대상모방적 특성을 내포한 것이므로 개성의 표현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우드는 "장식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내적인 허약을 외적으로 보완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하여 장식의 불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기하형태의 평면성을 방해하는 요소로서의 장식, 즉 질감내기 또는 벽면 조각을 통한 벽면의 입체화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평면적 장식성 즉 색채의 장식적 사용도 거부하였다. 이리하여 반트 호프는 위스-테르-하이드의 개인주택을 백색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설계하였다. 그러나 전형적인 데 스틸 건물들은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듯이, 그들은 색채를 건물의 형태와 불가분의 것으로 보고 전체적인 구성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취급하였던 것이다.

 

* 기계 생산에 의한 재료
 미래파에 의해 강조되었던 기계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데 스틸 작가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조형요소를 발견하였다. 기계 생산품은 '기능주의에 입각한 공업생산시대'라는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업생산품의 단순 명확한 형태는 데 스틸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조형언어에도 부합하였다. 기계생산품이 명확하고 순수한(비 재현적)형태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기능주의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이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새로운 소재는 새로운 형태를 가능하게 하였다. 철근콘크리트, 대형 판유리, 합성수지 등의 재효에 의하여 수공예적 형태에 대비되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형태가 성취되었다.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자연재료의 친근함, 수공업 유리의 미묘한 색조, 불완전한 마무리, 풍우로 인한 색채의 변화 등에 대하여, 공업 생산된 소재의 참신함, 판유리의 균질성, 고도로 정확한 마무리, 평면적이고 명확한 색채 도장 등이 새로운 미를 이루었다.
 새로운 재료는 형태뿐 아니라 기능면에서도 혁신은 가져왔다. 강철은 최소의 재료로 최대의 강도를 발휘한다는 기능주의적 목표를 충족시키는 전형적인 소재다. 강철을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지지대로도 넓은 지붕을 받칠 수 있었으므로 벽이나 기둥의 최소화를 가져왔다. 이른바 외팔보 구조에 의하여 보다 개방된 공간이 창조된 것이다. 특히 넓은 판유리의 사용은 건물과 외부공간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 비물질성과 무중력성 
 데 스틸 건축의 표면은 창문과 가는 창틀, 매끈한 콘크리트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조나 벽돌이 주는 물질감이 배제되고 있다. 더욱이 유리로 된 투명한 창문과 콘크리트로 된 불투명한 면이 요철 없이 단일한 표면으로 마무리됨으로써 벽면과 유리가 각각의 물질성을 떠나 추상적 구성요소로서 지각된다. 자연색이 아닌 백색이나 원색의 색채도 재료의 물질성을 약화시키는 요소이다. 그리하여 데 스틸 건축의 경우에는 물질로 이루어진 입체라기보다 공간을 구획하는 면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비물질성으로 인하여 데 스틸의 건물은 시각적으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부유감을 준다. 과거의 건축술이 두꺼운 벽과 그곳에 뚫려진 창문으로 이루어졌다면, 데 스틸 건축에서는 비물질적이며 중량감이 없는 공간 구성요소로서 벽의 부유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건물의 조형적 요소인 것이다.

 

* 개방성 : 방사형 팽창, 내외공간의 상호침투.
 데 스틸에 대한 라이트의 영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측면으로서 공간의 방사형 팽창을 들 수 있다. 슈뢰더 주택의 평면도를 보면 모든 기능공간들이 하나의 중심, 즉 계단으로부터 마치 팔랑개비와 같이 방사되어 나오고 있다. 이는 내부지향적으로 닫혀진 전통적 건물의 공간개념이 무한한 외부 공간을 향해 열려진 공간개념으로 대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종래의 건축이 고립된 상자와 같은 각자의 공간 단위들이 모여 전체 건물을 이루었다면, 데 스틸의 건물은 상호관련 된 공간들이 전체 공간을 향하여 개방되어있다. 그리하여 전체는 기능적으로 분할된 단일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벽면은 각자의 공간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 공간을 기능적, 형태적으로 분할할 뿐이다. 
 1923년에 발표된 다섯 번째 데 스틸 선언문에도, "우리는 폐쇄적 요소의 파괴에 의해서 내부와 외부의 이원성을 제거하였다"고 언급되어 있듯이, 벽을 허무는 것은 밀폐된 공간을 개방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내, 외부의 구분을 폐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하여 무한한 공간 전체를 각자 구성으로 포괄하는 유튜피아적인 도시계획에 도달한 것이 프레데릭 키슬러의 <공간도시>설계 모형이다.

 

* 시간성의 도입
 되스부르그가 건축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의 통합'을 주장하였던 바와 같이, 건축에 있어서 시간성의 도입은 데 스틸 건축의 중요한 혁신이다. 데 스틸 건축에서는 다양한 공간 분해를 통하여 끊임없는 시점의 이동이 구조물의 돌출을 통하여 무한한 시점의 연장이 유도되고 있다. 방사형으로 팽창되는 외부지향적인 공간전개와 가변 칸막이 등을 통한 단위공간의 유동성과 개방성으로 인하여 관찰자의 신체적, 시각적 이동과 확장이 극대화된다. 슈레더 하우스의 구조는 시접을 한곳에 고정시킴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를 돌려보면서 그 내적 구성에 자신을 투입시켜야만 인지되는 구조다. 이는 전통 건축의 정면성에 대비되는 다면적인 측면인데, 입체파회화에서 제시된 복수 시점이 건축에 적용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대상의 전체적 형태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단일 시점 공간 지각의 방식이다. 이와 같은 시점의 이동을 함축함으로써 데 스틸 건축의 공간은 시간성을 포함하게 된다. 특히 키슬러의 <공간도시>는 무한한 공간으로서의 시각적 연장을 암시함으로써 영원한 시간성을 포함하고 있다. 되스부르그는 특히 색채를 시간성 표현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색체는 시공관계를 눈에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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