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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b 28, 2008
  • 47771

<서론>
  기존의 가치와 문화에 대한 혁신을 시도한 운동인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정치, 경제가 상당히 낙후되어있던 상태였고, 미술에서는 1905년이 지나서야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의 다양한 조류 등이 전해졌다.

 미래주의는 이러한 조류들의 유입으로 야기된 혼란을 극복하여 이탈리아를 현대미술의 주류로 내세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제시된 새로운 세계관이다. 또한 미래주의 운동은 이탈리아 버전의 입체파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주의는 일반적인 사상을 갖고 출발하였으며 모든 전통과 유서깊은 가치 및 제도를 거부한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었다. 미래주의는 전적으로 프로그램에 의해서 세워진 운동으로 야수파나 입체주의처럼 반대파의 비평에 의해서 명칭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명칭을 스스로 선택하였으며, 그 자체의 이론적 해석을 문학적 형태로 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들의 선언문 발표라는 현대적전통은 주로 이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본론>
  이 운동의 창시자는 시인 필립포 토마소 마리네티(1876~1944)였다.
1909년 2월 <피가로>라는 잡지에 선언문이 실림으로써 미래주의가 탄생하였다. 그는 예술이 과거를 파괴하고 속도와 기계의 동력이 주는 유쾌함을 찬양하게 되길 바랐다. 미래주의의 격렬함은 미완성 상태의 이탈리아의 국가발전과, 이탈리아 문화를 짓누르는 과거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부담, 그리고 현대문학, 예술사조의 상충적인 다양한 경향들에 갑자기 직면한 데서 오는 마음속의 혼란 등에 대한 조바심에 비례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중의 하나는 이들 모든 경향들을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함으로써 혼란의 소지를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미래주의 화가 선언>
 1910년 3월 보치오니의 낭독으로 공표되었고, 이 선언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예술을 단호히 요구하였으며 과거의 예술에 대한 어떤 집착도 거부했다. 이 새로운 예술의 성격은 1910년 4월 보치오니의 <초현실주의 회화의 기술선언>에서 명백해졌다. 이 선언에서 그는 색채분할 체계를 중요한 기본으로 강조하였다. 1911년 보치오니는 미래주의 화가들의 추구개념을 "우리는 광학적인 또는 분석적인 인상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전체적인 체험을 표현하려는 것이다"라고 그 자신의 의도를 명료하게 정의했다. 미래주의 회화의 첫 번째 주요한 전시회는 1911년 4월 밀라노에서 열렸고 새로운 것은 그들 작품의 작풍이라기보다는 아직도 그 주제였다. 주제는 단호하게 미래주의적이지만 그것이 다루어진 방식은 대체로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였다.1912년은 미래주의 화가들에게 전환의 계기가 되는 해로, 세베리니의 주장으로 보치오니, 루솔로, 카라가 파리를 여행하게 되고, 그 곳에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를 접하게 되면서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가 단색의 파편화인 반면 미래주의 화가들은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형태의 파편화에 밝은 색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주제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일이 덜하게 되었고 입체주의식의 형태를 단편화시키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색채분할주의를 보충하는데 힘썼다. 1912년 2월 파리의 베른하임-죈 화랑에서 전시회가 열렸고 유럽 전역을 순회하였다. 각종 출판물과 강연등으로 뒷받침되었던 이 순회전은 1914년까지 계속되었고 마리네티는 모스크바에서 강연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미래주의는 다른 나라들에 그 추종자들과 실력 있는 후원자를 갖게 되었으며 지도적인 전위 예술 비평가및 시인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냈다. 이 예술운동은 양식보다 이념을 먼저 내세웠던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적 예술가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전위예술의 미학적 야심에 대해서까지도 도전을 한 것이었다.

 

  미래주의 회화는 예술을, 정적이라기 보다는 동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환경의 시각적 양상만이 아니라, 그 비시각적인 양상까지도 포착하는 수단으로써 사용하는 가능성을 시험하고 증명해주었다.

 

 자코모 발라 (1871~1958)는 추상 경향을 띤다. <가죽 끈에 목이 매인 개>는 19세기 말엽 마이브리지와 그외 몇 사람의 운동에 관한 사진 연구를 모방한 미래주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상당부분이 대체로 동작의 직관적 평가를 추상적 패턴을 통하여 찾아내는데 바쳐져있다. <사방으로 빛을 발하는 상호침투>라는 제목의 연작 (1913~1914)에서 사물의 운동을 떠나 대조적인 색조와 색체의 광학적인 유동성과 부동성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이는 1960년대의 옵아트의 선구자격이 되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카를로 카라(1881~1965)는 입체주의 (분석적 & 종합적 입체주의)에 가장 가까운 작가였고 전쟁기간을 통하여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일종의 시적인 사실주의로 나아갔다. <무정부주의자 갈리의 장례식>이 대표적 작품.

 지노 세베리니(1883~1965)는 입체주의 적인 평면들을 분할주의 적인 색채 표현에 결합시킴으로써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발레리나 + 바다>같은 식의 설명적인 제목이 붙는 작품들을 했다.

 

 루이지 루솔로(1885~1947)는 운동과 동력의 상징으로 충격파(shock-waves)라고 부르게 된 것을 탐구적으로 나타낸다. 화가보다는 작곡가로 기억되며, 소음을 내는 기계들을 발명 기계적 동력의 시대에 맞는 음악을 창조하려 하였다.

 

 보치오니(1882~1916)는 자코모 발라에게 회화 수업을 받았다. 초기에는 발라의 영향으로 산업화된 도시 풍경들을 분할주의 기법으로 그렸다. 가장 재능이 뛰어나고 창의성 있는 작가였다. 1910년경 회화에 일체주의를 접목시키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의 표현보다는 집단의 의지나 운동감의 표현을 의미하고 <대회랑의 폭동>, <일어나는 도시> 등이 이에 속한다. 새로운 도약은 입체주의를 알게 된 후로, 분할주의의 시점에서 벗어나입체주의의 서로 교차되는 파편들로 운동감과 음향, 공간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된다. <집으로 밀려드는 거리의 소음>1912년 4월 <미래주의 조각선언>을 발표하였다. 상당수의 조각작품이 미래주의 회화에서와 똑같은 종류의 이질적인 대상들(머리, 창문, 광선)의 상호 침투를 많이 이용하였다. <공간 속에서의 연속성의 특이한 형태>, <공간 속에서의 병의 전개> 같은 작품은 대상의 구조에 내재한 에너지를 드러내고 대상을 주변공간속으로 용해시키기 위해 형태를 열어서 드러내 보이려는 보다 근본적으로 조각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1914년 안토니오 산텔리아는 <미래주의 건축 선언>으로 그의 생각을 제시하였다. 그는 새로운 종류의 대도시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과거로 눈을 돌려 역사상의 양식들을 참고하지 않고, 신속한 수송시대의 새로운 인구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계 공학의 새로운 재료와 구조적 창안들에 맞추어 디자인되었다.

 

 기계문명이 가져온 젊음, 기계, 운동, 힘 속도를 찬양하고 이를 새로운 미로써 표현하려 애썼던 미래주의는 전쟁을 세계의 유일한 위생수단 이라 말했지만, 1914~18년의 전쟁은 미래주의의 종말을 가져왔고, 미래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보치오니와 상텔리아는 전쟁중 전사하였다. 전후 남은 작가들은 보다 전통적인 양식과 태도로 옮겨갔고, 1918년 이후 쇄신하려는 기도는 있었으나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결론>
  미래주의의 영향은 여러 작가와 다양한 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특히, 다다와 러시아의 아방가드르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래주의는 과거의 고답적인 형식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을 예찬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추구와 미래지향적인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과 형식적 틀을 파괴하는 아방가르드이었던 것이지, 허무주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있다. 과거를 부정하면서 현실을 바탕으로 신세계 건설이나 기계문명예찬 등 맑은 미래를 그리고 있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낙천주의자들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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