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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r 21, 2008
  • 43722

 김환기 (金煥基, Kim, Whan-ki, 1913~1974) - 달 두 개/Two moons, 1961, 캔버스에 유채 130x193cm

 수화(樹話)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거론된다. 1936년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귀국 후에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추상미술활동을 전개하였다. 김환기의 작업은 1963년 이후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것을 계기로 크게 뉴욕시기와 뉴욕 이주 이전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뉴욕 이주 이전의 작품이 구체적인 형상을 바탕으로 하였다면 뉴욕 시기는 순수한 추상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선, 면, 색과 같은 순수한 조형 요소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추상미술은 자연에서 출발하여 추상에 이르는 경향과 순수 기하형태에서 출발하여 추상에 이르는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김환기의 뉴욕 이주 이전 시기의 작품은 전자에 속한다. 초기작인 <론도>(1938)의 경우에는 사람의 형상을 단순화하고 색면을 분할하여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산월>(1960)이나 <달 두 개>(1961)의 경우에는 산, 달, 구름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대상을 단순화하여 한국적인 자연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반면, 뉴욕시기에 제작된 <여름밤의 소리>(1970)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고 단지 화면 상단에 오색 점만이 찍혀져 전형적인 순수 추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환기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한국적 자연의 서정이 담겨져있다. 산, 달, 새, 백자와 같은 구체적인 모티브도 그러하거니와 무수히 찍어간 색점도 다분히 동양적인 번짐의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문인들과 교류가 잦았던 김환기가 '미술작품에는 시(詩) 정신이 깃들어야하며 나름의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형태와 색채가 어우러진 시적이고 음악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였다. 한국현대미술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에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개관되었다.

 

남관 (南寬, Nam Kwan, 1911~1990) - 폐왕의 환상/Fantasy of Dethroned King, 1979, 패널에 한지, 유채 174.8x181.2cm

 1935년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를 졸업한 남관은 1955년 파리로 건너가 당시 그곳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던 앵포르멜
(Informel) 미술 운동을 접하게 된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서구 사조를 독자적 방식으로 수용하면서 파리의 대표적인 연례전람회인 <사롱 드 메> 등의 전시회에 초대되었고, 1966년에 프랑스 남부에서 개최되었던 <망통국제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차 대전과 6.25라는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보았던 상처투성이의 시체들에서 오래된 유물이 신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던 남관의 당시 작업은 어두운 갈색이나 검은 색 계열의 침울한 분위기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역사의 흔적> (1963), <환상> (1962) 그리고 귀국 전 파리 체류시기에 제작된 <세느 강변> (1968)은 콜라주 기법, 물감의 번짐을 이용하여 화면의 깊이감을 더하는 작품으로 종이와 채색을 중첩시킴으로써 시간의 퇴적을 환기시키고 있다. 1968년 귀국 이후 점차 추상에서 벗어나 사람의 얼굴이 변형된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폐왕의 환상> (1979)은 합판에 폐품을 콜라주한 것으로 구체적 형상이 되살아난 시기의 작품이다. 폐왕의 이미지는 필름 포장지, 약 포장지, 은박지, 우표, 수하물 표(baggage tag), 화선지 등 잡다한 오브제를 붙이고 채색함으로써 드러나게 되는데, 폐품 더미 속에 드러난 이미지는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풍자적으로 보여진다. 남관의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사적인 전쟁의 기억과 시간의 퇴적은 콜라주와 앵포르멜이라는 서구적 양식과 어우러져 독특한 추상의 세계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콜라주(Collage)

 '붙이다'를 뜻하는 프랑스 동사 'coller'에서 유래된 용어로, 평평한 화면에 종이 또는 사물을 덧붙이는 기법을 일컫는다. 이 기법은 입체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1912년작<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에서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앵포르멜(Informel)

 앵포르멜은 '비정형(informel)'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용어로 일체의 자연적인 형상은 물론이고 기하학적인 형상조차 배제하였던 미술사조다. 2차세계대전 이후 만연하였던 불안과 절망의 분위기 속에서 앵포르멜은 형상 대신 선과 면, 색채라는 순수한 조형요소, '그린다'는 작가의 행위 그리고 재질감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프랑스 출신의 장 포트리에, 쟝 뒤뷔페 등으로 대표되는 이 경향은 1950년대 말 한국 화단으로 유입된다. 당시 전쟁을 겪고 난 시대적인 위기감과 국전의 보수세력에 도전하는 젊은 미술가들의 도전정신이 새로이 유입된 서구 사조와 결합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지 않고 작가의 내면을 화면에 담고자하는 의지는 표현적이며 추상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물감을 두텁게 바르거나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혹은 거친 붓자국을 노출시켜 화가의 행위를 화면 위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구체적인 형상 없이 우연적인 형상을 드러내는 화면은 특정한 구도에 얽매이지 않는 '전면구도회화(all-over painting)'로 나아갔다.

 

 박서보의 <원형질 No 64-1>(1964), 정영렬<작품 No 22>(1965), 정창섭의 <백의 집결>(1961), 정상화의 <작품 64-7>(1964), 윤명로의 <문신 63-12>(1963), 김봉태의 <무제>(1964), 김종학의 <작품 603>(1963), 조용익의 <작품 64-612,1964>(1964), 이수재의 <발티모어의 아침>(1969), 박석원의 <초토>(1968), 이상욱의 <독백 75>등이 바로 이 계열의 작품이다. 김종학과 이상욱의 작품이 화가의 행위를 드러내는 격렬한 붓자국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면, 박서보, 윤명로의 경우는 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짓이기는 행위를 바탕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정창섭, 이수재, 정상화의 경우 물감이 자연스레 화면에 스며드는 재료의 자발성과 우연적인 효과를 통해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승조 (李承祚, Lee Seung-jio, 1941~1990) - 핵 No. 86-29/Nucleus No. 86-29, 1986, 캔버스에 유채 226.8x181.5cm

 이승조가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 후반이다. 이 무렵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여러 소규모 집단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각 집단들이 보여주는 작품 경향도 매우 다양하였다.

 이승조는 1960년대 말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할 때 주로 색띠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1970년대 초까지 제작하던 <핵 No. G-99>와 같은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색띠들이 차츰 정리되면서 마치 파이프 비슷한 형상이 나타난다. 실제 평평한 평면에 불과한 그림들에 파이프의 긴 옆면이 둥글게 돋아나와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흥미로운 착시효과로써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을 느끼게 한다. 1970년대 중반을 거쳐 1980년대 초반까지는 그림 속에 파이프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던 형태가 점점 흐릿해져서 1970년대 말경에는 바탕색에 거의 잠겨버리는 듯이 되어갔다. 선(혹은 띠)과 면이 이루는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핵 No. 81-22>와 같은 작품이 그러한 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경부터 1990년 작고하기까지 파이프 비슷한 형상과 윤곽이 흐려져서 흔적만 남은 듯한 모습이 공존하는 양식의 <핵 No. 86-29>와 같은 작품을 지속했다.

 생전에 그렸던 스케치들을 보면 그림 속의 어두운 부분을 음(陰), 그리고 밝은 부분을 양(陽)으로 표기해 놓았다고 한다. 이 사실은 작품의 제목이 일관되게 <핵(核)>이었던 것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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