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Kim Young Bin's Works Page

Article

도움이 되는 글

Article

미술관련 글
  • Dec 09, 2009
  • 37557

▶ 모던의 종언?: 그로이스

 모던의 전략은 “새로운 것의 이데올로기”였다. 예술적 모던은 어떤 예술적 문제에 대해 더 나은 해답을 내놓아서라기보다는 새로움의 제스추어를 가지고 등장하기 때문에 평가된다. 이에 대해 보리스 그로이스는 “새로움이란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그저 새로움”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새로움은 더 이상 참된 것의 드러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모던 예술의 핵심교리였던 것, “새로운 것은 늘 더 나은 것”이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뒤엎는다.

 

 나아가 그로이스는 전통을 배제한다는 모던이 실은 그 존립을 위해 전통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노베이션은 살아 있는 전통의 반대 개념이다. 하지만 그 개념은 “문화경제”, 즉 문화적 가치 관리체계, 말하자면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를 구별하여 관리하는 체계 속의 한 전략이다. 이노베이션에 목숨을 건 모던도 사실은 ‘전통’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지나간 것을 문서화함으로써 이를 “새로운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 낡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잉여적”. “불필요한 것”으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이 배제를 위해서 모던은 “전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럼 가치를 부여받는 새로운 것이란 무엇인가? 낯선 것, 이제까지 금지되었던 것, 터부가 되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그동안 축적한 문화적 문서과와의 비교 속에서 새로운 것일 뿐이다. 새로운 것이란 한 마디로 사물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집단적 평가의 산물이다. 새로운 것의 탄생은 가치의 전도를 수반하고, 이 작업은 대개 예술가 담론에 의해 수행된다. 가령 뒤샹의 <변기>는 “예술의 정의”를 물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의 구별을 뒤흔들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오늘날 뒤샹의 뒤를 따라서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새로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물관에서는 또 하나의 <변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 사이에는 늘 자리바꿈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세속적 공간에 속했던 사물이 이제 예술이 된다. 반면 과거에 예술이었던 것이 이제는 사물로, 길거리에서 팔리는 키치가 된다. 가령 팝 아트는 일상의 사물이 문화적 문서교 속에 편입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바꿈에도 불구하고 다다이스트들이 꿈꾸었던 것, 즉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의 구별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없애려고 하는 모던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문화라면, 더 이상 문화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cf. 보드리야르의 ‘트랑스에스테틱’)

 

 마지막으로 그로이스는 재료와의 싸움이 곧 현실과의 싸움이라고 본 모던의 자의식을 공격한다. 발생하는 것은 경계의 소멸이 아니라 경계선 양쪽의 사물들 사이의 자리바꿈이다.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경계는 다시 세워지고, 새로운 경계, 새로운 배치가 발생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이 경계를 허무는 것을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했으나, 문화적 문서고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투쟁을 사회적 해방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예술과 삶, 이론과 실천의 구별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 모던의 본질을 이루었던 요소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보리스 그로이스는 포스트모던의 멘탈리티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포스트모던’이라는 낱말은 장 프랑스와 리요타르가 1979년에 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의 현재의 지식의 상태」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그후 이는 현대 사회의 정신 상태를 일컫는 개념으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던의 본질을 “대서사의 죽음”에서 보았다. 예술의 영역에서 포스트모던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 다원주의, 전통의 복귀, 예술의 기호적 성격의 부활, 대중성과 소통의 성격 회복과 같은 경향으로 나타난다.

 

 볼프강 벨쉬

독일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의 대변자 볼프강 벨쉬는 포스트모던의 본질을 “급진적 다원주의”에서 찾는다. 예술적 모던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로 존재했던 것이 포스트모던에서는 의식적인 추구의 대상이 된다. 벨쉬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그에게 포스트모던은 안티모던이 아니라 “급진적 모던”이다.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과 작별하고 모던을 계속해 나가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찰스 젠크스

미국의 포스트모던의 대변자 찰스 젠크스는 80년대에 이루어진 건축학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그것의 본질이 이질적인 언어들, 다양한 문화적 취향들, 다양한 기능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절충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또 모던의 기능주의와 형식주의에 반하여 포스트모던의 회화와 건축은 “내용으로 복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울러 전통의 건축 요소의 인용과 함께 전통의 재해석 혹은 이중코드화가 나타나, 아이러니와 다의성과 모순의 효과를 낸다. 한 마디로 포스트모던의 본질은 “다가치성”에 있다는 것이다.

 

 리요타르

리요타르는 버넷 뉴먼의 작품과 칸트의 미학을 원용하여 포스트모던 문화를 “숭고의 미학”으로 규정한다. 현대예술은 “묘사할 수 없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현대예술이 가진 메시지가 있다면 “이 세상에는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할 수 없을지 모르나 생각 가능한 것이 있으며, 그것은 묘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리요타르가 여기서 “숭고의 미학”으로 특징지운 것은 소위 ‘포스트모던’ 계열이 작품이 아니라 모더니즘 예술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푸코

포스트모던의 또 하나의 주제는 삶의 유미화다. 부브너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강화되는 ‘생활세계의 유미화’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짜증나는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미셸 푸코는 “삶의 유미화”를 적극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는 도덕적 격률이 아니라 미적 원리에 따라 삶을 조직했던 고대인들의 ‘삶의 예술’을 발견하고, ‘자기에의 배려’, ‘자기 스타일링’, 자기의 도덕을 자기가 만들어 쓰는 미적 윤리학을 근대적 도덕의 강박에서 풀려나올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자연의 복귀

모던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신념이기에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다. 한때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자연이 모더니즘 예술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자연이 미학의 주제로서 복귀하고 있다. 이는 물론 벤야민, 아도르노와 같은 이론적 선구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생태미학은 벤야민, 아도르노와 같은 자본주의적 문명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의 회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좀더 절박한 요구, 즉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간의 신체에 곧바로 보복을 가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생태미학은 독일의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되고 있는데, 게르노트 뵈메는 “분위기”의 미적 가치를 “좋은 삶”이라는 윤리적 관점과 결합시켜 생태미학을 논하고 있고, 마틴 젤은 “관조의 공간”, “소통의 장소”, “상상의 무대”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자연의 미적, 윤리적 가치를 논한다.

 

  <진중권 교수의 강의 中>

제목 날짜
캔버스 매는 방법 File 2010.06.27
캔버스 크기 2008.02.08
2018 KAFA Art Fair에서 전시된 북한 작품 file 2018.10.04
2011년 김영빈 개인전 - Emotion 展 - 서문 2011.12.08
철학과 도시건축 - 데카르트와 비트겐슈타인 / 포스트모던 건축의 초(超)문화성 2009.12.09
모던의 종언? /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 그로이스 / 벨쉬 / 젠크스 / 리요타르 / 푸코 / 자연의 복귀 2009.12.09
모던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비판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한스 제들마이어 / 아놀드 겔렌 2009.12.09
프란츠 코페 / Arthuv Danto 2009.12.08
아도르노와 귄터 안더스 2009.12.07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2009.12.07
콘라드 피들러 : 직관으로서의 예술 2009.12.02
쇼펜하우어에서 니체로 Ⅱ - 니체―‘도취’로서의 예술 2009.12.01
쇼펜하우어에서 니체로Ⅰ - 쇼펜하우어―‘마취’로서의 예술 2009.12.01
모던의 선취로서 낭만주의 - 헤겔, 슐레겔, 마르쿠바르트, 졸거, 키에르케고르 2009.11.30
모더니즘의 미학 (2) 2009.11.26
모더니즘의 미학 (1) 2009.11.26
재미있는 그림 읽기 2009.05.21
창조적 인간과 기능적 인간 2009.03.12
'앎'에 대하여... 2009.03.05
피카소의 어록~ 2008.06.28
보들레르 미술비평과 시 2008.05.19
국립현대미술관 제4전시실 '한국현대미술' (2008년 4월) 2008.04.21
국립현대미술관 제3전시실 '인간·존재','자연·원형' (2008년 4월) 2008.04.21
현대미술비평과 포스트모더니즘 ; 다원주의(Pluralism) 미술론 2008.04.04
케테 콜비츠 (K the Kollwitz) 의 논문 2008.03.05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의 조형이념 2008.03.05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의 예술세계 2008.03.03
"기호학"에 대한 석사논문 2008.03.03
데 스틸 (De Stijl) 2008.03.03
개념미술 (Conceptual Art) 2008.03.01
미래주의 2008.02.28
태그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