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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ung Bin's Works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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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비판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성과는 예술적 진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진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미학적 아방가드르에 대한 비판은 종종 예술적, 정치적 반동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모던의 진보 개념의 상실과 함께 그것의 미적 진보성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모던에 대한 보수적인 비판이 가능해진다. 종종 이 비판이 정치적 반동으로 흘렀지만, 이제는 그 보수적 비판을 편견을 갖지 않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모던에 대한 보수적 비판을 한스 제들마이어와 아놀드 겔렌의 예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하지만 보수주의의 입장에 선다고 반드시 모던에 대해 비판적인 필요는 없다. 가령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같은 사람은 보수주의 입장에선 모던의 옹호자였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인간의 추방”

“새로운 예술은 대중에 반대하고 앞으로도 계속 반대할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대중과 무관하다. 아니, 대중에 적대적이다. (중략) 그것은 대중을 두 편으로 가른다. 소수의 친구 집단,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적들의 집단으로.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두 개의 적대적인 그룹을 가르는 강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섞여 있는 군상들이 두 개의 카스트 계급으로 나뉘어진다.”

미학적 모던의 프로젝트에 내재해 있는 이 부정의 가능성을 외려 긍정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에 가세트의 보수성이 드러난다. 사실 모던은 강령상으로는 자가를 혁명적/민주주의적으로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대중을 소외시켜 이해하는 자와 이해 못하는 자의 분리를 낳았다. 그리하여 “대중은 새 예술을 보고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새로운 예술은 고귀한 자, 신경의 귀족들, 본능의 귀족들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분리를 가세트는 동시에 한 시대의 징후로 읽는다.

 

“사회가 정치에서 예술까지 선택받은 자들과 평범한 자들의 두 진영, 두 등급으로 나뉘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물론 이 현상은 예술에 대한 전통적 이해와의 단절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 이전의 예술은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든 일단 이해는 되었다. 왜냐하면 예술은 그것의 올바름을 판별할 현실을 동일시의 준거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음악 역시 베토벤에서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개인적 감정을 노래하는 일종의 멜로 드라마였다. 하지만 모던 예술은 바로 이 전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 마디로 예술이 비인간화한 것이다. 이 모던 예술의 강령을 가세트는 이렇게 요약한다.

 

1) 예술을 인간적 내용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2) 살아 있는 형태는 피해야 한다.
3)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다.
4) 예술은 놀이이며 그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5) 아이러니가 주된 예술적 수단이 된다.
6) 가차없는 진정성과 정확한 묘사를 추구해야 한다.
7) 최근의 예술가들에 따르면 예술은 그 어떤 초월적인 의미도 갖지 않는 작업이다.

 

 예술이 인간을 두 그룹으로 분리시켜 사회를 변화시키리라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가세트는 예술이 의미 상실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술은 (중략) 주변으로 밀려났다. (중략) 순수한 예술의 추구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교만이 아니라 겸손이다.” 이로써 그는 예술에 초월적 의미를 부여하여 모던의 세속적 종교로 만들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있다. 모던의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준(準)형이상학적 체험에 대한 욕구를 거부한다. 예술은 더 이상 니체가 생각한 것처럼 형이상학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희망을 주지도 못한다. 예술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오직 그것의 미학에 대한 지각뿐이다. 이처럼 칸트적 어법으로 예술의 의미 상실, 사회와의 관련 상실을 강조하는 데에서도 우리는 그의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 가세트는 이처럼 (1) 모던 예술의 ‘사회적 자율성’과 (2) 그것의 ‘미적 자기 지시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조한다.

 

 한스 제들마이어

제들마이어는 모던 예술을 “중심의 상실”로 규정한다. 하지만 가세트와는 달리 그는 이를 부정적인 현상으로, 즉 문명이 퇴락하는 현상의 징후로 읽는다. “예술의 자율성은 그것의 해체를 위해 필수적인 전주곡이었다.” 이렇게 예술의 해체를 말하는 그의 어법은 본질적으로 헤겔의 ‘예술의 종언’ 테제를 문화사적으로 변주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예술은 교회와 궁정이라는 두 개의 패러다임 속에 유의미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속에서 이 “연속”은 끊어지고 대신 개별화한 요소들의 “병렬”이 들어선다. “병렬=컴퍼지션. 괴테가 싫어했던 말.” 이로써 그가 의미했던 것은 구체적으로 회화로부터 건축적인 것의 배제, 도상학의 죽음, 추상화의 경향, 전체성의 예술작품의 종언, 예술들 상호간의 경계의 무너짐, 그리고 장식의 배제였다. 모더니즘 건축가 Loos에게 은총이었던 것이 제들마이어에게는 “죽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예술의 자율화와 순수화와 함께 “중심의 상실”을 가져온 또 하나의 요인은 “죽음과 악과 카오스의 묘사였다. 모던 예술이 죽음과 갖는 밀접한 관계는 파괴에 대한 숭고한 쾌감으로 특징지워진다. (cf. 데리다의 ‘해체론’과의 유사성에 주목하라.) 제들마이어에 따르면 모던 예술은 인간 실존 앞에 놓인 심연을 내려다 보며 전율하는 게 아니라 외려 그 지옥, 혼돈, 병적 상태로 자기 파괴적으로 뛰어들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던 예술을 ‘퇴폐예술’로 규정했던 나치 미학과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그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다. 피상적인 냉소의 놀이가 있다.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데에 예술적 수단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중략) 스스로 기만당한 자들의 기만, 비천한 것의 뻔뻔한 자기 묘사가 있다. 한 마디로 이것은 묵시록의 왜곡상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모던 예술에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인간으로부터의 도피. 인간은 더 이상 미적 생산의 대상이나 척도가 아니라는 것.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모던의 예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순수예술이란 그 자체가 이미 구조적 인간적대성의 표현이다.

“예술을 평가하는 데에 ‘순수’ 예술적 척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적인 것을 외면하는 이 소위 ‘순수’ 예술적 척도란 진정으로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미적인 척도일 뿐이다. 순수 미적 척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 시대의 비인간적 특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고려 없이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예술작품의 자율성의 선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모던 예술이 인간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종교적인 것을 예술의 영역에서 몰아내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이로써 그는 미학의 중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를 건드린 것이다. 즉 예술의 생활세계적 관련성, 말하자면 예술과 정치, 예술과 도덕의 관련성의 문제를 다시 미학적 고려의 대상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예술 속에 표현되는 비인간성이 곧바로 현실의 비인간성을 강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모던 예술의 비인간성이 관찰된 이상, 그것을 무턱대고 긍정만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제들마이어의 진단은 가톨릭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시의성을 잃지 않은 것이다.

 

 아놀드 겔렌

그는 예술의 가시적 특징이 아니라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소위 “도상합리성의 주요이념”에 따라 미술사를 세 단계로 구별한다.
(1) 관념적 현전의 예술: 2차적 모티브. 즉 신화, 이념, 역사적 사건, 전설 등의 묘사
(2) 사실주의 예술: 1차적 모티브. 즉 한갓된 대상의 외관의 묘사와 재인식에 주력하는 예술
(3) 추상예술: 2차적 모티브. 1차적 모티브를 모두 상실하고 오직 형식만 남은 예술

 

 겔렌은 이렇게 서구의 예술사를 그림의 의미 내용이 감소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이를 영혼의 언어 능력의 상실로 규정한다.

이렇게 의미 내용이 감소한 결과 (1) 모던 예술에 특징인 ‘해설’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말하자면 비평가는 아무것도 의미하는 것을 해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아울러 (2) 인간과 현실의 접촉이 총체성과 깊이를 상실하는 대신 그 접촉 방식의 폭이 넓어진다. 바로 여기서 모던 예술의 다양성이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발전의 결과 예술은 “미적인 것의 주권성”을 획득하고 “주체의 의미”를 더 강조하게 된다. 객관적 상관자를 잃어버린 모던 예술은 매우 주관적인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예술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과 실험의 여신이다. 그 결과 현실과 예술은 공히 진지함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낭만주의적 아이러니와 비슷한 상황이 빚어진다. 즉 진짜와 가짜, 어른과 어린이, 정상과 광기를 나누는 구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완전히 의미 내실을 상실한 모던 예술의 특징을 겔렌은 “말이 없음”으로 특징지운다. 오늘날 예술은 말을 잃고 침묵을 하게 되었다. 아도르노 역시 “말이 없음”(Sprachlosigkeit)을 모던 예술의 특징으로 들었으나, 겔렌에게 이것은 아도르노에게서와는 달리 모던의 긍정성이 아니라 부정성의 징후였다. 겔렌이 이 논의를 펼 때에 모델로 했던 것은 아직 미적, 사회적 긍정성을 갖고 있었던 초기 모던이 아니라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70년대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냥 시작만 하면 된다고 겔렌은 시니컬하게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가 따르는 바, 오늘날 박스 종이나 초콜릿 상자 등으로 예술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1)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 왜? 다다는 이미 1913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2)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왜? 오늘날엔 누구나 다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기만 하려는 도덕적으로 애매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겔렌의 모던 비판은 제들마이어처럼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 면에서 아도르노의 미학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도르노에게는 아직 긍정적이었던 현상이 겔렌이 이 이론을 펴던 시대에는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전화한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겔렌의 생각은 모던에 대한 포스트모던의 비판과 통하는 면이 있다.

 

  <진중권 교수의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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