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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c 08, 2009
  • 32071

▶ Franz Koppe

 Franz Koppe는 아도르노의 이론 중에서 예술의 본질을 진리로 규정하는 것을 부정하면서 출발한다. 예술을 진리로 규정하는 시도는 그것을 “비규정성, 다의성, 픽션성 혹은 범례성”으로 설명하든 그 어느 것으로 설명하든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는 없다고 한다.

 이 모든 범주들은 예술을 통해 과학과 구별되는 의미에서 무엇이 전달되어야 할 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그 기준들의 근본적인 기술적인 결함이다.

 

 이에 따라 Franz Koppe는 다시 예술의 기호적인 성격과 그것의 소통적 작용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는 모던 예술을 소통의 거부로 규정한 아도르노의 테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기호로서의 예술을 욕구의 분절화를 수행한다고 한다. 예술은 구체적인 욕구의 상황 속에서 일상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욕구들을 분절화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술을 소통으로서 욕구의 경험을 매개하며 그런 의미에서 욕구혁신적이다. 말하자면 예술을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새로이 창출해내어 소통시키는 양식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은 우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술이 매개하는 그 욕망은 바로 이러한 삶 속에서 어떤 삶의 의미에 대한 욕구 열망을 가리킨다.

 

 Franz Koppe의 이 테제는 어떤 의미에서 모던 예술이 요구하지도 않았고 또 충족시킬 수도 없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욕구, 우리 현존의 우연성을 이기게 해줄 의미욕구. 이것을 분절화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칸트의 무목적성을 새로이 해석하여 미적 현실의 개념적 조응성을 실제로는 불가능한 인간의 목적론적 욕구를 마치 충족된 것인양 표상한다. 마찬가지로 현존재의 우연성에 예술은 미적 조응성과 필연성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우연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조직한다. 그런 의미에서 Franz Koppe의 테제는 모던 예술의 어떤 경험 즉 Aleortorik의 경향과 대치된다. 왜냐하면 미적 창조과정에서 Aleortorik(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삶의 우연성을 제거하는 대신 그 우연성을 직접적으로 예술에 도입하기 때문이다.

 

 Franz Koppe에게서 예술은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과는 달리 긍정적인 행복의 약속이 된다. 아도르노라면 아마 이를 기만이라 불렀을 것이다. 벤야민에게서 부정의 신학과 달리 Franz Koppe의 예술은 그동안 종교가 해왔던 역할 그리하여 종교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을 긍정적으로 채우는 역할을 한다.

 

 이런 도식에 따르면 미에 관한 정의 역시 쉽게 얻어진다. 예술에 전달한다는 그 욕망이 충족된 것으로 표상되는 미적 텍스트는 아름답고 그렇지 못한 텍스트는 추하다. 모던의 예술은 미의 체험을 방식으로만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Franz Koppe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충족된 욕망의 표상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쉽게 키취(Kitsch)예술로 넘어가기 쉽다.

 

▶ Arthuv danto: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 place

 페테 뵈르거가 말한 아방가드르의 특징인 예술을 삶의 실천 속으로 끌어들이는 경향, 즉 예술작품과 일상적 사물 사이의 구별을 더 어렵게 했다. 모던 예술이 가진 이 존재론적 애매성을 해명하려는 시도가 미국의 철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행해졌다.

Danto는 모던 예술작품 중에 물리적으로 일상 생활의 대상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Danto는 물리적으로 구별 불가능한 대상들을 하나는 작품으로 하나는 물건으로 만들어주는 차이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물고 들어간다. 그리고 이를 세 개의 측면에서 해명한다.

 

 1. 제도적인 테두리 / 제도라는 장

물리적으로 동일한 사물의 존재론적인 위상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작품이 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 속에서 비로소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는 사실의 망각에서 넥타이에 푸른 물감을 칠한다고 해도 그것은 제도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하기에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이미 피카소가 그것을 했기 때문에 예술작품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

 

 2. 역사적, 이론적 장 / 해석이라는 장

각각 뉴턴의 법칙에서 제1법칙과 제3법칙을 묘사한, 그러나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작품의 예.
예술작품은 해석의 대상이다.
종종 현대 예술작품에는 제목이 붙어 있고 이것이 가능한 해석의 방향을 암시해준다. 즉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속성 외에 거기에 가해지는 해석이 중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해석을 요구하지 일상의 대상은 해석을 자기 구성의 전제로 갖는 예술작품과 구별된다.

 

 3. 이론적, 역사적 테두리 그리고 제도적 테두리와 함께 예술을 구성하는 factor로서 Danto는 모던 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존재론적 특이성을 언급한다. 아리스트텔레스의 수사학으로 되돌아가 Danto는 현대예술이 본질적으로 은유적 언술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모던 예술의 전략을 상당 부분 일상 생활의 대상들에 은유적 의미를 줌으로써 그것을 변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물이 끓는다”, 라는 표현 속의 ‘끓는다’라는 말은 “피가 끓는다”는 문장 속으로 옮겨 놓으면 전혀 색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모던 예술은 이런 식으로 일상 사물을 그것의 익숙한 삶의 실천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집어 넣음으로써 그 사물에 대한 색다른 은유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작품으로 변용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모던 예술의 신비한 유일성을 플라스틱한 설명을 얻게 된다. 특히 앤디 워홀의 <Brillo Boxes>를 예로 Danto는 모던 예술작품의 은유로서의 존재론적 특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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