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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c 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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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콘라드 피들러는 딜레탕트 미학자로, 화가 마레스와 조각가 힐데브란트와 교류하면서 그들의 영향 하에 이론적 작업을 했다. 그의 미학은 미적 향수나 지각에 기초한 수용자 미학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창작에 관련한 “예술가미학”으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와 같은 추상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직관으로서의 예술

피들러는 예술가의 세계와 담론적 사유의 세계를 대립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예술은 표상을 발전시킨 것이고, 모든 사유는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호 관련을 맺지 않고도 인식에 복무한다. 피들러는 예술의 본질이 그것이 매개하는 독특한 ‘인식’에 있다고 본다. “예술을 미적 목적에도, 상징적 목적에도 복무시키지 않는 자만이 올바른 예술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은 한갓 미적 형식의 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념적 인식도 아니고, 뭔가 독특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다른 세계에 산다. 그는 비루한 세계에서 일탈한다. 개념의 세계를 곧바로 세계로 등치시키는 것. 거기에 오류가 있다.” 이렇게 사유와 구별되는 인식으로서 예술의 본질은 ‘직관능력’에 있다. “예술적 재능의 본질은 직관적 파악 능력을 가지고, 혹은 그런 능력을 위하여 태어난다는 점에 있다. 예술가에게 직관은 그밖에 있는 어떤 외적 목적에 복무하지 않는, 그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직관이다.”

여기서 피들러는 모던의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념을, ‘예술가의 생산적 직관’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조형예술은 사물을 있는 대로가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재현한다.” 이는 “예술의 본질이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가시적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고 한 파울 쿨레의 언급과 상통한다. 여기서 아리스트텔레스 이래 서구의 회화사를 지배해온 대이론, 즉 모방론의 전통은 최종적으로 파괴된다. “예술적 활동은 노예적 모방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가 주관의 자의성의 표현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의적인 발명”이 아니라 “자유로운 조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경험의 (주관적, 자의적) 조작이 아니라 그것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 주권

이렇게 콘라드 피들러는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어떤 외적 의무에 속박시키는 것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킨다. 현실, 그리고 생산적 시각의 자유성. 양자를 매개하는 것이 예술가이다. 예술가 자신, 그의 내면, 그의 표현력과 조형력이 새로운 것의 근원이 된다. “탁월한 예술가의 의미는 그들이 자기들의 예술을 가지고 인간의 인식하는 의식에 새로운 것을 가져다 준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세계를 당대의 한계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모던 예술을 특징짓는 표현론의 최초의 이론적 표명일 것이다. 그러나 피들러는 예술가의 내면적 직관과 퍼포먼스를 구별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그 표현 없이도 존재할 어떤 것의 표현이 아니다. 즉 예술가의 의식 속에 살아 있는 형상의 모상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예술가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외려 개별적 경우에 한 개인이 최고의 발전에 도달한 상태에서의 예술적 의식 그 자체이다.” 말하자면 작품 자체가 최고조에 달한 예술적 의식 그 자체라는 것이다.

 

 자연주의와 이상주의

하지만 이것은 그저 주관적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다. “예술가가 자연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예술가를 필요로 한다. (중략) 예술가의 활동을 통해 자연은 (중략) 더 풍부하고 더 고차적인 현존에 도달한다.” 한 마디로 자연의 다양성은 예술작품을 통해 비로소 현상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자연을 이중화(=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독자성을 통해 보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시야를 열어준다. “예술은 자연보다 위에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에 뭔가를 덧붙인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예술이 자연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그것이 자연에 대한 더 발전된 표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상적 의미에서 ‘자연’을 구성하는 그 어떤 표상보다 더 발전된 표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실주의(혹은 자연주의) 대 이상주의라는 예술사의 낡은 이항대립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예술은 항상 현실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에게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을 만들어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항상 이상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만든 모든 현실은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술은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존재론적 과정이자 동시에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적 과정은 주관도 아니고 객관도 아닌 뭔가 새로운 존재론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시각이 합류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예술가이다.

 

 소재에 대한 거부

낡은 모방론에서 벗어나 예술의 인식적 본질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결국 피들러는 예술의 소재를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말하자면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예술외적인 이것을 배제하다 보니, 소재를 거부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제재, 플롯, 이야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낳게 된 것이다. 바로 여기서 (1) 대상적인 것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2) 조형에서 예술가의 주권을 인정하는 현대 추상예술이 등장하게 된다. 피들러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본 “예술적 의식”, 이것의 표현매체가 바로 대상 관련성을 버리고 오직 형태와 색채로 이루어진 현대의 추상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가 피들러의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진중권 교수의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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