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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c 01, 2009
  • 33136

'마취'로서의 예술

 쇼펜하우어 미학은 그 어떤 고전적 미학보다 20세기 미학과 예술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미학의 현대성은, 간단히 요약하면,

(1) 철학에 대한 예술의 형이상학적 우위를 주장한 점, (2) 예술적 의식의 첫째 조건으로서 시간, 공간, 자아의 해체를 말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이 말하는 ‘개념으로서의 일반자의 우위’나 칸트가 말하는 주관주의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에서 “탁월한 인식 형태로서의 예술”에 대해 말한다. 그에게 예술이 수행하는 인식은 이념의 인식, 즉 변하지 않고 무상하지 않은 참의 인식이었다.
“모든 관계의 밖에서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유일하고 본래적으로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것을 고찰하는 것, 그 어떤 변화에도 종속하지 않고, 따라서 그 어떤 시대에도 동일한 진리성을 갖고 인식되는 것을 고찰하는 것, 한 마디로 의지의 직접적이며 적합한 객관성을 이루는 이념을 고찰하는 것, 그것은 어떤 종류의 인식인가? - 그것은 예술이다. 천재의 작품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개념적 인식에 대해 예술이 갖는 우월성은, 단지 예술을 통해 플라톤적 의미에서 이념에 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인식이 삶의 뿌리로까지 연결되는 어떤 ‘태도’를 필요로 한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에게 인식은 그저 지적인 작업이 아니라 인간의 전 존재에 관련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철학만이 아니라 예술도 본질적으로 현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다.”([세계]) 인간의 현존재의 문제는 모두 ‘의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로서의 인간은 우리 현존재의 물리적 조건, 즉 공간, 시간, 인과성의 사슬에 묶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더 이상 전통 철학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제약성, 우리 의식 속의 충동적 구조(=이 의지의 핵심은 이미 쇼펜하우어에게서 성적인 것으로 파악된다)의 표현이다.

 

 여기서 삶의 뿌리와 연결되는 ‘태도’의 미학.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미학은 더 이상 인식론적 미학이 아니라 벌써 존재미학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시간, 공간, 인과성에 사로잡힌 우리의 육체는 자기의 필요, 욕망, 번뇌로 인해 진정한 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의 인식은 오직 시공과 인과성의 피안에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일상적 욕망과 필요에 사로잡혀 끝없이 변하는 육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자는 불변적인 이념의 진리에 전념할 수가 없다. 때문에 어떤 “태도”, 즉 의지와 거기에 종속된 육체의 부정이 진정한 인식의 전제조건을 이루고, 이 위대한 ‘부정’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미’다. 오직 ‘미’만이 인간을 최소한 일정한 시간 동안이나마 사로잡아 그가 현존재의 제약성, 자기의 의지와 육체의 자극을 잊게 만들어준다.

 

 “인간이 미에 탐닉하는 한 그는 모든 욕망과 필요에서 자유롭고 유혹속에서 참을 인식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말하자면 영원한 이념의 인식에 필요한 저 위대한 부정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미적관조의 태도이다. “(예술은) 자기의 관조의 대상을 세계 진행의 흐름으로부터 떼어내어 그것을 고립시킨다. (중략) 시간의 수레바퀴가 멈춘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충족이유율과 관련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규정한다. 삶에 필요한 것들의 맥락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 현상하는 의지의 직접성과 절대적인 거리 취하기---이것이 또한 미적 향유에서 ‘주관적 측면’을 이루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이 의지로 가득차 있는 한, 우리가 끊임없는 희망과 공포에 휩싸이며 욕망의 물결에 사로잡히는 한 (중략) 의지의 주체는 끝없이 악시온의 바퀴에 매여 있게 된다.“ 오직 어떤 대상을, 그 ‘미'에 힘입어 의지로부터 떼어놓을 때에만, 주체는 의지에 복무하는 데에서 해방되어 순수 객관적인 관조 속에 들어갈 수가 있다.” 또 그때에만 우리는 끝없는 욕망과 성취의 물결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된다. 이때 인식은 의지에 복무하는 노예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이 순간 우리는 의지의 충동을 벗어버리고, 의지의 강제노동의 휴일을 축하한다. 악시온의 바퀴는 멈춘다.“

 

 이렇게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독창성(=천재성)”이다. 이는 일종의 무관심성의 태도인데, 칸트의 것과 달리 대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충족시키려는 내면적 노력의 결과로 비로소 생성되는 어떤 것이다. 이 태도 속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연미와 예술미, 미적 생산과 미적 경험의 구별을 지워버린다. “미적 향유는 원래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혹은 자연이나 삶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환기될 수 있다.” 이 미적 향유에서 결정적인 것은 시간의 정지, 공간의 초월, 그리고 인과성의 무효화이다. 이럴 때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곧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모던을 선취한 쇼펜하우어 미학의 반고전적 계기이다. 미는 더 이상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미의 개념은 오늘날 너무나 다의적이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개념을 확정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더 이상 미학이론의 주요 테마를 이루지 못한다.

 

 쇼펜하우어 역시 예술이 가상이, 속임수, 픽션, 나아가 자기 기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예술은 각성된 의식의 일시적인 마취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거대한 “연극”이다. 예술은 우리가 연극에 지루함과 피곤함을 느끼고 마침내 진지함으로 넘어갈 때까지 일시적으로 우리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일종의 마취제이다. 이렇게 쇼펜하우어에게 예술은, 우리의 삶이 의지의 명령에서 벗어나 모든 번뇌를 종식시켜주는 사태, 즉 무(無)로 들어가게 되는 상태, 즉 불교적 의미의 해탈의 상태의 일시적인 예기이자 선취이다.

 

 <진중권 교수의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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