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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 26, 2009
  • 34110

■ 제1강 예술, 철학, 모던Ⅰ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플라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철학과 예술 사이에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은 철학적으로 구제를 받는다. 말하자면 시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는 "역사보다 보편적인 것"으로서 보편적 지식인 철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시가 "허구를 통해 진리를 말한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작하여, 미학을 "저급한 인식의 학"으로 규정한 바움가르텐을 거쳐서, 미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규정한 헤겔에 이르러 이론적으로 완성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19세기까지에 이르는 시기에 서구 미학의 대이론을 이루는 이 논증의 전략을 흔히 ‘진리미학’이라 부른다.

 

 진리미학이 본질적으로 예술적 고전주의의 이론적 표현이라면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노선이 존재한다. 예술에 인식적,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며 예술 고유의 미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칸트의 미학이다. 여기에 따르면 예술은 개념적 규정의 구애를 받지 않는 순수형식 요소와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가 된다. 고전주의의 진리미학의 대립물로 시작한 칸트의 미학은 18, 19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예술적 실천의 영역에서 자기를 관철하기 시작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주도적인 미적 관념으로 자리잡는다. 오늘날 예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특징짓는 관념은 본디 칸트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낭만주의적 관념의 영향 하에 고전주의적 진리미학의 대립물로 등장한 이 노선을 흔히 ‘형식미학’이라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미학의 역사는 고전주의적 진리미학과 낭만주의적 형식미학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미학은 고전주의적 진리미학의 이론적 완성이었다. 그가 ‘예술의 종언’을 얘기했을 때, 그것은 곧 20세기에 예술에 발생할 어떤 사건의 미학적 예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에 헤겔이 염두에 두고 있는 그런 예술은 최종적으로 종언을 고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의 종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예술관념의 종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의 예술관념은 20세기에까지 (가령 게오르그 루카치를 통해) 영향력을 잃지 않았으나, 이미 20세기의 예술실천은 헤겔 류의 진리미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대상성의 상실(=추상회화), 무조음악(=쇤베르크)의 등장, 의미의 배제(=다다이스트)는 헤겔 미학이 존립할 기반 자체를 무너뜨렸다.

 

 헤겔의 빈 자리에 등장한 것이 칸트의 형식미학이다. 하지만 헤겔의 진리미학을 제치고 칸트의 형식미학이 관철되는 과정은 간단히 예술이 미적 자율성을 위해 일체의 진리를 거부하는 과정으로 기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미학에 예술을 한갓 삽화로 만들어버리는 독단화의 위험이 내재해 있다면, 형식미학에는 그에 못지 않은 위험이, 즉 예술이 한갓 장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예술은 우리 머리 위의 벽지의 문양처럼 매우 사소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예술은 간단히 미적 자율성을 위해 ‘예술적 진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예술적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였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진중권 교수의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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